지난 5월 31일 오후 5시 30분경, 영등포구 사회복지과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동안 신세진 것이 많았는데 너무 감사했습니다”는 말을 반복하는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상담전화를 받고 있던 담당자에게 이번 통화는 단순한 하소연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이 ‘내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 주세요’라고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를 건 주인공은 당산1동에 거주하는 50대 중반의 김◌◌씨였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생계‧의료‧주거급여 등을 받고 있던 김◌◌씨는 평소 알코올 의존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같은 날 오후 2시경 당산1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와 돌봄매니저가 김◌◌씨의 집을 방문해 안부를 살피고 상담을 진행했었다.
동 직원들이 다녀간 후 5시 30분경 사회복지과로 전화를 건 김◌◌씨는 “동주민센터 직원이 오늘도 본인 집을 방문해 돌봐주셨다. 그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했고, 진짜 동 직원에게는 폐 끼치고 싶지 않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는 유언과도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김◌◌씨에게 ‘현재 거주지가 어디인지, 혹시 자살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등을 질문하며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이어 통화가 끝난 직후 당산1동 주민센터에 연락해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즉시 김◌◌씨 가정을 재방문할 것을 요청했다.
당산1동 주민센터에서는 곧바로 복지플래너와 돌봄SOS센터 간호사가 김◌◌씨 가정을 방문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현장 확인 결과 김◌◌씨는 수면제를 다량 복용해 이미 자살을 시도한 상태였다. 김◌◌씨 옆에는 부엌에서 꺼내 놓은 칼도 발견되었다.
복지플래너 등은 평소 김◌◌씨의 건강 상태를 감안했을 때 정신질환으로 인한 극도의 응급 상황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신속히 112 및 119 등에 신고해 협조를 요청했다. 2시간 가량 이어진 대치 끝에 복지플래너 등은 마침내 김◌◌씨를 설득해 병원으로 이송하고 응급치료를 받은 후 귀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다음 날 김◌◌씨 가정을 재방문해 상세히 조사한 결과,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해진 경제적 상황, 특히 채무관계 및 주거 문제 등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당산1동 복지팀에서 긴급 사례회의를 실시하고 영등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 및 구 복지정책과에서도 긴급사례관리 대상으로 관리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또한 돌봄SOS센터에서 제공하는 중식 도시락 서비스를 즉시 연계해, 매일 도시락 배달과 함께 김◌◌씨의 안부를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같은 저소득 취약계층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이 같은 상황에서 최일선 현장에 있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의 긴밀한 대응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구에서는 이번 사례와 같이 평소 깊은 관심과 노력을 통해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위기가구의 문제를 내 일처럼 여기고 솔선해 돌봄에 나섬으로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낸 직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코로나19의 장기화 속에서 물질적‧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께서는 구를 비롯해 전문기관 등에 도움을 요청하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글=안경희 기자(jyounh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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