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씨는 4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24시간 근무-24시간 휴식의 ‘격일교대제’로 일하고 있는데 근로계약상 점심과 저녁시간을 포함해 하루 총 6시간의 휴게시간이 보장돼 있지만 제대로 쉬어본 적은 없다. 휴게실은 지하주차장 구석에 있어 소음과 매연, 습기 탓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도 힘들고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관리사무소나 입주민에게서 바로 호출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급은 6시간의 휴게시간을 뺀 18시간에 대해서만 받고 있는 상황.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지만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어 그마저도 일자리를 잃을까봐 꾹 참고만 있다.
# 경비원 이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6시. 하지만 5시면 도착해 업무를 시작한다. 분리수거장 정리와 전날 밤 도착한 택배정리부터 출근시간에는 지상에 이중 주차된 입주민 차량을 밀어서 옮기는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경비실에 보관된 택배를 집까지 갖다 달라거나 짐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은 물론 쓰레기를 대신 버려달라는 요구도 있지만 거절하지는 못한다. 입주민이 문제나 불만을 제기하면 바로 관리사무소로 불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들게 일한 대가로 이씨는 한 달에 190만 원 정도 받는다.
서울시가 공동주택 경비노동자의 장시간 근무 관행과 근무형태, 임금체계를 개선해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과 장기근속 문화정착에 나선다.
서울시는 오는 9월부터 시내 40개 공동주택 단지를 선정해 ‘경비노동자 근무교대제 개편 컨설팅’을 시범 실시한다고 밝혔다. 단지별 특성에 따라 맞춤형 근무개편안을 제시해 경비노동자의 권익과 건강권을 보호하고 동시에 입주민의 관리비 인상 부담은 최소화하는 ‘고용안정 상생모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시는 지난 5월 28일 서울시내 49개 아파트단지와 상생협약을 맺고 공동주택 경비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근무환경개선을 통해 장기근속 정착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현재 공동주택 경비노동자는 ‘감시‧단속직’으로 분류돼 근로시간‧휴일과 같은 근로기준법의 주요 규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격일 교대제’ 근무를 비롯한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으며, 휴게시간이나 휴게실이 없는 경우도 많아 경비노동자의 건강권과 권익 보호를 위한 개선방안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9월 중 공동주택 단지 40곳을 선정하고, 10~11월 2개월간 단지별 특성을 반영한 컨설팅을 실시해 경비노동자 근무방식과 임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한다. 대상 단지는 입주민과 경비노동자 간상생협력 의지가 높은 곳을 우선 선정할 계획이다.
먼저 공인노무사가 직접 단지를 방문해 경비노동자와 입주민, 관리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대면 상담과 인식조사를 실시하고, 사업설명회도 개최한다. 이후 조사 결과와 단지별 규모, 경비노동자 수, 자동화수준, 관리방식 등을 반영해 체계적인 컨설팅을 진행하고 단지별로 최적의 개선안을 마련해 제시하는 방식이다.
근무방식은 24시간 격일 교대근무는 유지하되, 밤에는 일찍 퇴근하고 일부 근로자만 남아 야간에 근무하는 ‘퇴근형 격일제’, ‘경비원·관리원(청소·택배관리 등)구분제’, ‘야간 당직제’ 등 다양하게 변경 가능하다. 또한 근로직종 변경이나 교대근무 형태, 근무시간 등에 따라 임금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외에도 휴게시간 및 연차휴가 사용 현황 및 택배·분리수거·주차관리 등 생활서비스 분담 등 경비노동자의 근무방식에 대한 컨설팅과 개선방안도 함께 제시할 계획이다.
개선방안은 실제로 경비노동자의 근무방식과 임금산정 시 적용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도 해준다. 적용과정에서 경비노동자와 입주민간 의견차이가 있을 경우엔 해당 노무사가 직접 조율에 나서고 최적의 합의안을 도출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개선안 이행 후 해당 단지를 다시 찾아 필요시 추가 개선방안도 제시한다.
시는 이번 경비노동자 근무방식 및 임금제 개편 컨설팅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노동권익을 지키고, 처우를 개선해 장기근속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입주민의 관리비 인상 부담 최소화 방안도 함께 마련해 경비노동자, 입주민 등 공동주택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고용환경 조성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비노동자 근무제 개편 컨설팅을 원하는 아파트 단지는 9월 8~17일까지 서울시 공동주택 통합마당(https://openapt.seoul.go.kr) 또는 S-APT(https://s-apt.seoul.go.kr)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 후 서울시 노동정책담당관 이메일(wem2000@seoul.go.kr)로 제출하면 된다. 참여는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면 제한 없이 가능하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해 6월부터 공동주택 경비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전담 권리구제 신고센터(070-4610-2806, 02-376-0001)’를 설치해 갈등조정부터 법률구제, 심리상담까지 무료로 전 방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경비노동자 자조모임 지원 및 노동교육 실시 등 경비노동자들이 역량을 강화하고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사업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지난해에는 아파트 경비노동자 1만3,000명에게 마스크 21만 장을 배포했다.
한영희 서울시 노동‧공정‧상생정책관은 “입주민의 안전한 생활과 편의를 위해 일하고 있는 공동주택 경비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건강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입주민들의 관리비 인상 부담은 최소화 할 수 있는 고용안정모델을 만드는 것이 이번 컨설팅의 목적”이라며 “입주민과 경비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조성하고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글=김병헌 기자(bhkim43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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