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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는 죽음 문화

입력 2020년02월03일 15시0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한국의 정신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종교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무속신앙, 유교문화, 도교문화, 불교문화, 기독교문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문화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드러나지 않게 혼재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다양한 양상으로 용해되어 있다.

 

무속신앙에서의 인간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매우 슬픈 일이자 한스러운 일로 인식되어 무속신앙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반면 불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는 교리를 통해 죽음의 심각성을 완화 또는 미화시킴으로써 죽음의 치명적 현실을 도피하고자 한다. 유교는 죽음을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소멸되는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하며 유교의 죽음관은 조상제례만 보더라도 그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이를 전 국민이 지켜야할 도덕적 의무로까지 규정하게 되었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제시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기존의 유교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죽음문화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부모님과 어르신들 앞에서 감히 죽음의 얘기를 꺼낼 수 없는 문화였지만 이제는 연명의료결정을 위해서라도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며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서와 유산상속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는 문화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 85세의 전립선 암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후 호스피스병동에서 50여 명의 지인을 초대해 생전 장례식을 열어 밝고 예쁜 옷을 입고 함께 춤추며 노래하는 장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는 죽은 이후의 장례는 의미없다며 임종 전에 지인과 함께 이별인사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인간에게는 살고 싶은 욕망과 죽고 싶은 욕망이 공존한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도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 자 없으며, 아무리 불행한 자라도 살고 싶은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노년의 할머니가 죽고 싶다고 자주 말하지만, 막상 죽음 앞에서 생애 대한 집착은 젊은이 못지않은 것이다. 인간의 이 두 가지 욕망 중 우리는 당연히 삶에 대한 의지를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모든 인간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명제가 부정되기 시작한다면,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생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 단지 의학적으로 더 이상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 본인 생전의 뜻에 따라 자신의 장기를 타인에게 기증하기도 하고, 기계적인 장치 속에 고독하게 죽지 않고 가족과 함께 고요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임종은 두 가지로 구별되는 모습이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치며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알고서는 오히려 그 죽음을 맞이하러 반갑게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 이후에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죽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물론 필자도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는 구호처럼, 기왕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일 것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죽음을 예견하며, 지금부터라도 언제 죽음을 맞닥뜨려도 주저하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삶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였던 내일이며, 나의 남은 생애의 첫 날이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이 하루를 생명을 만끽하며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성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정창국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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