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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아지트

입력 2018년09월10일 14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요즘 우리들은 사람들의 홍수, 나만의 시간, 공간이 사라진 지금에 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형제가 없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나만해도 4남매가 복작대며 잠시도 조용하지 않게 컸으니 말이다. 잘 산다는 집도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배당해 주기는 힘들 던 시대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들은 (나를 포함해 우리 오빠, 그리고 나의 친구들) 왜 그렇게 구석이나, 작은 공간을 찾아 자신의 아지트로 삼아 그곳에서 숨어 있기를 즐겨했던지……

 

이불로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가 놀던 기억, 우리 오빠는 장속에 숨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오빠가 없어졌을 땐 늘 장롱 이불 속에서 자고 있는 오빠를 발견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른이 된 후로는 몸을 숨길 만한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이불 속의 그 포근함도, 보자기로 문을 만들어 놓았던 작은 나만의 공간의 아늑함도 모두 추억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난 운 좋게도 그것도 우연히 나만의 작은 공간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남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부터 내 차를 운전해야 했던 나는 어느 비오는 여름날, 해가 질 무렵의 그 시간에 작은 공간 안에서 차창에 떨어지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왠지 모를 서글픔(어렸을 적 엄마에게 혼나고 나면 나의 아지트에 숨어서 분명 나는 주워 왔을 거라는 확신을 하며 그 확신에 더욱 서글퍼 서러워졌던)과 그 비슷한 감정, 또 나만의 아지트가 주었던 그 안락함에 괜히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 나니까 얼마나 시원하고, 후련하던지. 엉엉 울면서 운전하고 있는 날, 옆 차에서 바라본 운전자는 참으로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겠지만, 남이 뭐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나는 어른이 된 후로 감정의 절제만을 강요당하고 살다가 정말로 오랜만에 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역시 우울하고 슬플 땐 더욱 슬픈 생각과 슬픈 노래를 들르라는 말은 옳은 말이다).

 

만약 이 모든 일들이 내 작은 차 안이 아니었다면 가능 한 일이었을까! 그 후로는 난 가끔 내 차 안의 ‘나만의 공간’을 즐기게 되었다. 복잡한 일이 있다거나, 감정적 평온하지 않을 때 한적한 곳을 찾아 너무너무 슬픈 노래를 틀어놓고 한참을 그냥 그렇게 앉아 있고는 한다.

 

요새는 독신자들이 많으니 집이란 공간을 자신이 혼자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 보통의 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리고 자신만의 방이 있다하더라도 방과 작은 자동차 안의 공간은 비교 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첫째, 자동차 안은 방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가 감싸 안을 수 있는 공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사람은 자신이 공유 할 수 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즉 너무 넓은 공간에 사람이 혼자 있으면 불안해지는 것처럼).

 

둘째, 아무리 오래되고 성능이 떨어지는 카오디오라도 그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가슴 떨림이라니(어떤 음악이라도 그 음악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셋째. 운이 좋아 비라도 내린다면 그 차체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소나기라면 더욱 좋겠다)는 어느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합주를 따라 올 수 없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나의 작은 아지트를 즐긴다. 요즘같이 복잡하고 골치 아플 때 나만의 아지트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어렸을 적 친구를 생각하며 말이다.

 

항상 아침의 신선함을 일깨우며 동녘의 붉은 해를 희망의 징표로 내세우는 우리의 차들로 우리의 차 생활이 더욱 즐거웠으면 한다.

김일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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