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어르신의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상호자극을 통해 다양한 부위의 뇌 기능을 활성화시켜 인지건강과 건강수명 향상을 동시에 유도하는 치유정원인 ‘100세 정원’을 25일 국내 최초로 개소한다. 치매고위험군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금천구 시흥동(13%)의 청담종합사회복지관 내 약 885㎡ 규모로 조성했다. 서울시 ‘인지건강디자인 사업’의 하나다.
100세 정원은 ‘치유환경’ 개념을 도입한 국내 첫 사례다. 치유환경은 치유를 목적으로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인 상호자극과 건강을 유도하는 공간이다. 노인의 신체적 기능과 인지기능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바깥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하면 인지능력도 감퇴해 치매가 빨리 진행된다. 따라서 노인요양시설이나 병원 등의 시설입소를 늦추고 살던 커뮤니티에서 잔존능력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AIC(Aging in Community)를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제공하면 노인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의료비용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원예치료교실 및 소통공간
실제로 미국의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는 1984년 자연풍경이 보이는 병실과 그렇지 않은 병실 중 풍경을 본 환자들의 회복력이 더 빨랐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100세 정원 이름은 다양한 콘텐츠 경험을 통해 어르신들이 100세까지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길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예컨대, 24절기를 따라 걸을 수 있는 240m 길이 산책로엔 절기별 대표 꽃‧나무 100여 종을 심어 오감을 자극한다. 산책로 곳곳엔 운동기구를 설치해 신체활동으로 인한 자극을 유도한다. 어르신들이 직접 식물을 기를 수 있는 화단, 식물 가꾸기를 교육하는 원예치료 교실, 미술작품이 전시된 감성충전 갤러리 공간은 정서적 자극을 유도한다. 소통‧휴게 공간에선 다른 어르신들과 소통하면서 사회적 교류를 촉진한다.
뇌가소성 이론에 따르면 노인의 뇌도 경험에 의해 새로 생성되고 활성화된다. 노인의 운동은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고, 특히 오감을 균형 있게 경험하는 환경에서는 노인 뇌의 비 활성화된 영역이 자극돼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다. 미국 베스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평균연령 73세의 1만1,06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노인은 6개월간 최소 52시간의 운동을 했을 때 인지능력이 가장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책로 내 휴게공간 이용
시는 100세 정원 총 240m를 하루 5바퀴(1.2km) 산책하면 건강수명이 15분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원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어르신들의 인지능력은 향상되고, 균형 잡힌 운동으로 낙상 등의 안전사고 예방, 불안‧우울 등 부정적인 정서를 환기시켜줄 것으로 시는 기대하고 있다. 하버드 메디컬스쿨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하루에 1.6km를 걸었을 경우 건강수명이 21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서울대 심리학과 최진영 교수는 노화로 인해 감각기능이 떨어진 노인들이 다중감각을 통해 지적자극을 주고, 자연은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며 동료들과 같이 산보를 할 경우 고독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어 궁극적으로는 치매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100세 정원은 ▴24절기 산책로 ▴인지건강 맞춤형 운동기구 ▴원예치료교실 ▴감성충전 갤러리 ▴휴게‧소통 공간 등으로 구성됐다.
100 정원 안내도
첫째, 산책로엔 24절기를 대표하는 꽃‧나무 100여 종이 식재됐다. ‘털수염풀(춘분)’은 마치 강아지 털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주고, ‘가우라(춘분)’는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양으로 시각을 자극한다. 둘째, 산책로 곳곳엔 뇌‧시력‧상체‧하체‧균형을 주제로 한 인지건강 맞춤형 운동기구 5종이 설치됐다.
셋째, 원예치료 교실은 금천구 주민모임인 ‘플로라’팀이 주축이 돼 100세 정원의 식재 관리와 콘텐츠를 활용한 원예 마음치료 프로그램이 열린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금천구도시농업 네트워크와 금천구치매안심센터, 플로라팀과 함께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넷째, 감성충전 갤러리엔 허윤희 작가의 ‘나뭇잎 일기’ 100점으로 구성된 갤러리와 담벼락을 화려한 색채의 꽃송이로 수놓은 이요안나 작가의 ‘꽃보라 갤러리’가 조성됐다. 갤러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24절기 흐름 중 가을 구간에 마련됐다. 허윤희 작가의 작품은 기억과 시간, 존재의 흔적을 나뭇잎을 소재로 표현하고 이를 100개의 타일로 구워 벽면에 설치했다. 또 이요안나 작가의 ‘꽃보라 갤러리’는 복지관 주차장 입구 무미건조했던 벽면에 ‘바람이 불자 제각각의 아름다운 꽃들이 날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글귀와 함께 화려한 색채의 꽃송이로 가득 메웠다. 그밖에 산책로 곳곳엔 어르신들이 쉬거나 다른 어르신들과 소통할 수 있는 휴게소통 공간이 조성돼 있다.
한편, 서울시는 2014년도부터 인지건강디자인 정책과 사업을 수립해 현재까지 총 5곳에 유형별 인지건강디자인을 적용했다. 양천구 신월1동(다세대‧다가구 밀집지역)과 영등포구 신길4동(임대아파트 단지), 노원구 공릉동(임대아파트 단지), 송파구 마천동(저층주거 밀집지역), 금천구 시흥동(저층주거 밀집지역)이다. 싱가포르 살기좋은도시센터(CLC)가 신길동에 직접 찾아와 벤치마킹하고, 서울시가 유엔 해비타트에서 인지건강디자인 사업 사례를 직접 발표한 바 있다.
지남력 향상 게시판을 통한 소통
서울시는 어르신이 학습 및 적응 능력이 남아 있을 때 외부활동과 오감자극 기회를 확대하고 혼란을 감소시키는 등 일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인지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에 따라 인지건강디자인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서성만 서울시 문화본부장 직무대행은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어르신이 20년마다 2배씩 급증하는 가운데 치매에 따른 사회문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와 우리 가족의 문제”라며 “일상 가까운 곳에서 체감하고 활용하는 인지건강디자인을 개발‧적용해 고령화를 대비하고 치매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정책으로 확대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김병헌 기자(bhkim43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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