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 돌입하면서 노령인구가 늘어나 노인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50대 중반, 60대 초중반에 퇴직해 10~30여 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CJ대한통운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복지기관 등과 협력해 ‘실버택배’ 모델을 구축하고 활성화를 통해 고령사회에 필요한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적극 창출하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포춘’이 선정하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기업 50’에 뽑힌 바 있다.
CJ대한통운은 ‘일자리, 친환경, 지역사회 기여’라는 3대 핵심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시니어 일자리 창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이후 전국 지자체들과 협약을 통해 실버택배 모델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현재까지 전국 150여 개 거점에 1100여 개의 노인 일자리를 창출했다. 정책브리핑은 그 중 가장 활발하게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시 노원구 상계주공14단지 내 경로당에 위치한 거점 지역을 방문했다.
CJ대한통운의 실버택배 사업에 참여하는 이은호(77) 씨는 노원구 아파트 단지 내에서 ‘친환경 전동카트’로 택배를 전달하고 있다. 친환경 전동카트는 어르신 전용으로 국토부에서 제공한 것으로 탄소저감 효과도 있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제공=정책브리핑
‘친환경 전동카트’ 타고 아파트 단지 내 근거리 배송
실버택배란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까지 물량을 싣고 오면 노인들이 ‘친환경 전동카트’를 이용해 각 가정까지 배송하는 사업모델이다. 고령사회에 필요한 양질의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인 빈곤문제 해소에 기여하는 등 높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동수 CJ대한통운 홍보팀 부장은 “실버택배는 이재현 회장님이 평소 지역사회의 성공을 위해 플랫폼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기업과 사회가 동반성장 할 수 있어야 한다는 CSV(Creating Shared Value) 정신과 맥을 같이합니다”고 소개했다.
실버택배에 참여하고 있는 실버 배송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실버 인력 1인당 하루 배송하는 택배 물량이 50~60개 정도, 3~4시간 근무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적고 매일 발생하는 택배 물량으로 인해 일자리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지속돼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다. 무엇보다 실버 배송원들은 택배 업무를 통해 동료나 주민들과 대화하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갖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높은 소속감도 느낄 수 있다.
이은호(77) 씨는 이곳에서 실버택배 업무를 시작한 지 벌써 6년째다. 이 씨는 "큰 수입은 안 되도 용돈 정도 벌 수 있고 무엇보다 70살이 넘어서도 일하며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며 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실버택배는 80세가 넘어서도 힘과 체력만 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실버 배송원들이 택배차량이 들어오자 분주한 가운데 즐겁게 일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실버택배’는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곳 실버 배송원들은 보통 오전 9시쯤 출근한다. 오후 2시경에 택배 차량이 들어오기 때문에 출근체크의 개념은 없고 자유롭게 경로당에 나오는 형태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 배송원들은 모두 25명. 이 씨는 "경로당을 거점으로 하다 보니 출근하는 느낌보다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으로 나옵니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는 퇴직할 쯤 우연히 집 앞에 걸린 벽보를 보고 이곳에 오게 됐다. 수입은 많지 않지만 크게 어렵지 않을 거 같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초반에 월수입은 30만~40만 원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요령도 생기고 택배 물량도 늘어서 배 이상으로 수입이 올라 재미도 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돼 일석이조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친구는 허리가 안 좋아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건강해져 지팡이를 안 짚고 다닙니다"며 체력만 된다면 실버택배 업무하는 것을 권장했다. 그러면서 "택배 일을 하는 것이 물론 힘이 들지만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정도고 건강에 상당히 좋습니다. 택배 업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걷게 되는데, 많이 걸을 때는 4시간 정도 걷다보니 2만 2,000보를 걷습니다"고 말했다.
“일을 하다보면 길이 나타나고 끝이 있기 마련”
요즘 청년 취업을 빗대어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다’고 표현한다. 청년 구직난의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인생 선배로서 이 씨는 "무엇을 하든지 움직여야 합니다"며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노는 것보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길이 나타나고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고 강조했다.
실버배송원 허남민(75) 씨가 택배물 분류 작업을 끝낸 후 배송을 하려고 친환경 전동카트에 물건을 싣고 있다.
퇴직 후 선배의 소개로 이곳으로 오게 된 또 다른 베테랑이 있다. 허남민(75) 씨는 퇴직 후 몇 달을 놀다보니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허 씨는 "여기서 일한 지는 4년 됐고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며 노인일자리의 필요성을 말했다.
허 씨는 자식들이 모두 결혼해서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실버택배 업무를 시작한 이후 삶의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집사람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웃으며 답했다. 그는 "많은 돈은 아니어도 손주들이 오면 용돈을 줄 수 있어 좋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요즘 3포세대·5포세대·7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청년들은 사회·경제적 압박으로 연애, 결혼,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하며 힘들어 한다. 그는 이러한 청년들에게 “행복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고난을 당해도 거기서도 행복은 찾을 수 있습니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로 ‘실버택배’에 참여한 지 6년·4년 째인 이은호(왼쪽)·허남민 씨. 이 씨는 “실버택배는 80세가 넘어서도 힘과 체력만 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사실 실버택배 사업의 탄생은 주민 편의에서 시작됐다. 김종원 CJ대한통운 택배운영혁신팀 부장은 “택배기사들이 밤늦게까지 배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보니 주민도 불편해해 택배기사들의 업무 분담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고 말했다. 실버택배의 경우 한 거점에 들어온 물량을 어르신 20명 정도가 한꺼번에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늦어도 오후 6시면 배달이 완료된다.
김 부장은 “주민들은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물건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기존의 택배 기사들은 늦은 시간까지 배달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르신들은 일자리가 생겨서 여러모로 좋습니다”고 실버택배의 장점을 말했다. 그는 “특히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은데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아닌 고정적으로 배달하는 이웃 할아버지한테 물건을 받으니 안심하고 택배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실버택배 사업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복지기관, 기업이 협력해야 한다. 김 부장은 “정부는 일자리 정책이라는 큰 방향을 잡아줘야 하고, 지자체는 실질적인 공간 확보를 위해 복지기관을 지원하고, 복지기관은 노인 관리, 기업은 물량 공급해 수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상생할 수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CJ대한통운, 2차 고도화 ‘일상생활지원센터’ 채비
CJ대한통운은 내년을 목표로 실버택배 사업의 2차 고도화 계획을 하고 있다. 일명 ‘일상생활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택배 업무를 기반으로 공구대여와 간편사무수리, 근거리 배송, 세차, 세탁 등의 서비스를 추가해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일하는 어르신들은 개선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김 부장은 “어르신뿐만 아니라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또 CJ대한통운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택배의 개념으로 다른 회사에서도 참여할 수 있어 보다 많은 물량을 공급하고 일자리를 제공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택배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 일자리가 없어지는 걱정은 덜어도 됩니다”고 말했다.
글=안경희 기자(jyounh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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