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어디로 휴가를 떠날지 늘 고민이다. 한반도 지도를 펼쳐들고 수많은 해변들을 눈으로 훑는다. 말로만 듣던 해변, 숨겨진 고요한 해변,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던 그곳까지, 발길보다 먼저 설레는 마음을 옮긴다.
고래의 꿈을 닮고 싶을 때 영덕 고래불해수욕장
영덕은 이웃한 울진처럼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한 지역이 아니다. 덕분에 어디를 가도 사람에 치일 걱정은 없다. 영덕 해안의 길이는 95km에 달한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7~8월의 주말이라도 각자가 원하는 풍경과 자리를 찾아 흩어지는 피서객들 덕분에 영덕 해변은 한산함을 잃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명사 20리’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고래불해수욕장은 초입의 고래 조형물을 시작으로 20리, 즉 8km나 펼쳐진 길다란 해변이다. 고래불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이 해변에서 종종 고래가 모습을 보였고 고래가 수면에서 물줄기를 뿜는 모습이 고래의 뿔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제는 전설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지만 바다의 꿈을 상징하는 고래가 여전히 저 바닷속 어딘가에서 나타날 것을 상상하면 고래불해수욕장에서의 물놀이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백사장이 깨끗하고 모래가 굵어 모래찜질을 하기도 좋은 고래불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물이 맑은 평온한 해변이다. 텐트를 칠 수 있는 송림이 해변과 나란히 뻗어 있어 야영을 하기에도 좋다. 해변과 나란히 놓인 길은 걷기도 좋은데 그 때문인지 해변의 일부는 영덕의 블루로드 C구간과도 겹친다. 왼쪽에는 바닷가, 오른쪽으로는 송림이 지치도록 뻗어 있는 고래불해수욕장에서는 한여름에 고래불해변축제도 열린다. 백합이 많은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백합줍기, 그물끌기 등의 행사와 함께 다양한 이벤트도 펼쳐진다.
시 한 수 절로 읊어지는 풍경 속으로 울진 망양정해수욕장
예로부터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했던 까닭에 오랫동안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울진은 그 덕분에 청정한 자연을 지켜낼 수 있었다. 같은 동해 바다라도 강릉이나 부산과는 달리 고요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바다 빛도 유달리 푸르고 맑다.
울진의 해수욕장 중에서도 관동팔경 제1경인 망양정이 있는 망양정해수욕장은 동해안의 해수욕장 중 수온이 높고 경사가 완만해 아이들이 놀기에 제격이다. 이곳에서라면 길게 뻗은 백사장에서의 모래놀이도 아이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울진에서는 펜션이나 모텔보다는 민박이 더 잘 어울린다. 해수욕장을 따라 민박집도 많다. 이런 곳에선 동네 어르신들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정겨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정겨움을 택하는 것이 울진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망양정해수욕장 위로 산책로를 따라가면 망양정과 해맞이공원이 있다. 짙푸른 망망대해를 배경 삼아 들어앉은 망양정에 올라 울진의 바다를 내려다보면 높은 산에라도 올라온 듯 탁 트여 시원하다. 실제로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팔경 중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해서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하고 시를 읊기도 한 장소다.
울진 시내와도 멀지 않은 망양정해변 주변으로는 엑스포공원과 성류굴, 민물고기생태체험관, 불영계곡, 왕피천 등 여러 명소가 있어 울진 여행을 하기에도 편리하다. 7번 국도를 따라 한참 더 내려가면 기성망양해수욕장도 있으니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위로가 필요할 땐 서천 장항송림해변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자연스럽게 숲이나 바다를 찾는다. 숲과 바다가 마음에 은근한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서천에 가면 애써 숲이냐 바다냐를 선택할 필요 없이 우리에게 힘을 주는 숲과 바다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해변에 늘어선 방풍림 정도가 아니다. 산책하기 좋은 꽤 거대한 숲이 반긴다.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동해의 푸른 바다도 좋지만 가끔은 갯벌 위로 지는 일몰에 더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서천군 장항읍의 장항송림에는 시선을 압도하는 높이 15m, 길이 286m의 바다 위 하늘다리가 있다. 밀물에는 다리 기둥이 물에 잠겨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하고 썰물이면 넓게 드러난 갯벌 위를 걷는 맛도 남다르다.
고운 모래의 백사장이 1km 정도 펼쳐진 장항해변 주위로는 방풍림 역할을 하는 수령 40~50년 된 소나무 13만여 그루가 큰 숲을 이루고 있어 솔 향을 맡으며 하늘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볼 수 있다. 바다를 저만치 발아래에 두고 소나무 꼭대기의 가지를 벗 삼아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은 걸어본 사람만이 알 테다. 소나무 군락까지 즐기는 장항스카이워크는 바다와 숲의 오묘한 조화가 압권이다. 스카이워크 아래로는 송림과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하늘로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인상적인 솔숲은 1.8km나 뻗어 있고 곳곳에는 바다를 벗해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도 마련돼 있다. 서해의 비릿한 바다 내음과 끈적한 바닷바람도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커피 향 따라 향기 테라피 강릉 안목해변
강릉하면 경포대와 함께 커피가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이제 낯설지만은 않다. 강릉에서 커피집으로 유명해진 초창기의 ‘보헤미안’과 ‘테라로사’를 시작으로 커피 자판기와 다양한 커피집이 해변을 따라 늘어선 덕분에 커피거리가 된 강릉의 안목해변. 요즘은 경포대가 있는 경포해수욕장보다 커피가 있는 안목해변이 대세다. 안목해변 커피거리는 카페마다 조금씩 다른 매력과 맛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강릉항 옆의 안목해변에 서면 커피 향과 바다 향이 어우러져 알 수 없는 묘한 향기를 뿜어낸다. 바닷가에 앉아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리다 보면 커피 향과 바다 향은 물론 해송으로 둘러싼 솔밭에서 나는 솔 향으로 절로 향기 테라피를 체험하게 된다. 커피 맛이 바다와 만나 그 맛과 향이 배가된다. 안목해변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쌓인 스트레스도 어느새 슬며시 걷힌다. 눈, 코, 입, 귀, 촉감이 모두 살아나는 커피 해변이다.
500m 정도 뻗어 있는 안목해변은 해송 숲과 바닷길을 모두 걸을 수 있는 ‘강릉 바우길 5구간’에 속한다. ‘바다호숫길’이라고도 불리는 바우길 5구간은 약 16km로 강릉항에서 시작해 안목해변과 송정해변의 솔숲, 커피거리를 거치고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 경포해변, 순포해변을 지나 사천항까지 가는 길이다. 그야말로 강릉의 해안을 따라 걸으며 바다와 솔숲, 커피를 모두 만나며 하루 걷기에 딱 좋은 코스다.
커피 하면 강릉에서는 안목해변 일대가 대표적이지만 유명세는 늘 그렇듯 다소의 번잡함을 동반한다. 커피와 함께 한적함을 누리고 싶다면 근처 사천진해변도 좋다. 사천진해변에도 곳곳에 독채의 커피집들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며 모래알 고운 백사장에서 해수욕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일출 명소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긴다 고성 교암·문암해변
북한과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인지 한여름에도 여행객이 많지 않은 강원 고성군은 때 묻지 않은 자연 덕분에 스쿠버다이빙을 하기에도 좋다. 드넓은 해변을 사람에 치이지 않고 한가롭게 즐길 수 있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맛보는 바닷속 여행도 한가롭다. 특히 속초에서 불과 1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접근성도 좋은 교암해변은 다이브리조트도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자격증이 있는 동호회원들이 전문적인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기도 하지만 경험이 없는 사람도 체험 다이빙을 즐기거나 입문자가 일주일간 머물며 다이빙 라이선스를 딸 수도 있다. 백사장 길이도 1km나 되는 교암해변은 모래 질이 좋은 데다 경사가 완만해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좋다. 교암해변 옆으로 이어진 문암해변 역시 스쿠버다이빙은 물론 모래사장이 깨끗해 해수욕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교암해변에는 고성팔경 중 제2경에 들며 동해 최고의 일출명소로 꼽히는 천학정(天鶴亭)이 자리해 있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위에 위치한 천학정은 앞으로는 확 트인 바다와 기암괴석들이 장쾌한 느낌을 주고 뒤로는 100년 이상 된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아늑하다. 천학정은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바다, 소나무 숲을 벗해 있어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이곳에 들른 이들을 자연스럽게 풍경 속에 녹아들게 한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논다 포항 장길리복합낚시공원
한반도 호랑이 꼬리인 포항, 볼록 튀어나온 호미곶을 중심으로 자그만치 204km나 뻗어 있는 포항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유명해수욕장은 물론 이름 모를 아담한 해변들이 개성을 뽐내며 더위에 지친 여행자를 기다린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일출 명소인 호미곶과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 외에도 포항의 긴 해안 곳곳에는 보석 같은 해변들이 미지의 풍경을 선물한다.
그중 구룡포항에서 조금만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낚시와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장길리복합낚시공원이 있다. 이곳은 독특하게 대놓고 낚시꾼을 위한 해변이다. 이곳에는 부유식 낚시터와 해상펜션 등 낚시에 필요한 시설물과 숙박시설들이 마련돼 있어 낚시 좋아하는 아빠들에겐 제격이다. 감성돔을 비롯해 학꽁치 등 다양한 어종을 낚을 수 있다. 낚싯대도 대여해준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놀 곳이 변변치 않은 것도 아니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이글루 모양의 해상펜션은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오리배와 카약도 탈 수 있다. 또 인근에 해수욕을 할 수 있는 해변도 있고, 카페와 편의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장길리는 2012년에 해양수산부 ‘이달의 어촌’으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특히 물고기가 많아 낚시꾼과 스쿠버다이버들의 사랑을 받는 외딴섬 ‘보릿돌’까지 170m의 교량을 만들어놓은 것이 독특한 멋을 풍긴다. 교량 끝에는 해상전망대도 있어 아이들과 어른 모두에게 좋은 쉼터가 된다.
글·사진 이송이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