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파구리’, ‘골빔면’, ‘불닭게티’의공통점은? 정답은 ‘모디슈머(Modisumer)’에 의해 탄생한 상품이라는 것. 모디슈머란 ‘수정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모디파이(modify)’와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msumer)’를 조합해 만든 말로, 제품을 제조사가 제시하는 표준 방법에 따라 만들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내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짜파구리는 짜장라면과 매운 라면을, 골빔면은 골뱅이와 비빔라면을, 불닭게티는 불닭라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해 만든 ‘메이드 바이 소비자’ 요리다.
모디슈머는 이처럼 편의점에서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여러 식품을 혼합해 훌륭한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데서 시작됐다. 특히 라면을 활용한 레시피들이 인기를 끌었다.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선보여 인기를 끈 짜파구리 열풍을 주도한 짜장라면은 2013년 상반기 판매순위 1위에 올랐다. 강한 매운맛이 특징인 불닭 맛 라면에 치즈와 삼각김밥을 같이 넣는 레시피도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출시 초기 주목받지 못했던 이 라면은 2014년 라면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홀로 70%가 넘는 매출 성장률을 보이며 그해 성장률 1위를 기록했다.
사진=tvN
내 멋대로 상품을 소비하는 모디슈머가 늘면서 이 같은 현상은 이제 다른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미용 분야에선 ‘레이어링(Layering : 겹치기) 뷰티’가 인기다. 대학생 김현지 씨는 요즘 안 쓰는 화장품을 활용한 레이어링 뷰티에 푹 빠졌다. 색이 없는 립밤에 아이섀도를 섞어 컬러 립밤을 만들고 파운데이션에 피부보다 약간 어두운 톤의 립스틱을 섞어 섀딩 파우더를만든다. 컨실러와 립스틱을 섞어 치크 블러셔로 사용하기도 한다. 김 씨는 “유행이 변할 때마다 화장품을 새로 사면 비용이 많이 들고 내 맘에 완벽히 드는 제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이렇게 섞어 쓰면 새로 화장품을사지 않아도 되고, 내 피부에 맞으면서 원하는 색깔로 만들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향수 원액을 배합해 쓰는 향기 레이어링도 유행이다. 또 향기지속제와 섬유유연제를 함께 사용하면향이 오래 지속되는 섬유유연제를 만들 수 있다. 이밖에 비싼 인테리어 소품 대신 공병, 다 쓴 전구, 시든 꽃 등을 이용해 만드는 장식품 등에 대해 누리꾼들은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모디슈머가 확산되는 데는 누리소통망(SNS)의 역할이 컸다. 모디슈머가 자신만의 제품 이용법을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 SNS를 통해 공유하면서 누리꾼들이 이를 퍼나르고 또 다른 이용자들이 이를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모디슈머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모디슈머들은 누가 더 기발하고 뛰어난 이용법을 소개하는지 주목하고, 이를 통해 재미를 얻고 은근한 경쟁을 즐기기도 한다.
1인 가구의 증가도 모디슈머 확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은 지난해에만 27.1%. 2035년이 되면 전체 가구 비율의 34.3%가 1인 가구가 될 것이라 한다. 1인 가구는 제품의 편의성과 저가상품을 지향한다. 이런 특성은 간편한 편의점 인스턴트 식품을 주로 이용하는 부류의 모디슈머 증가를 이끌었다.
사진=tvN
마지막으로 가치소비의 성행을 꼽을 수 있다.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는 남과 다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합리적인 소비와 개성이 담긴 가치소비의 접점에서 모디슈머가 탄생했다. 모디슈머는 기존의 경제적인 소비 한도 내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재창조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한국트렌드연구소 박성희 연구원은 “현대사회의 메가트렌드인 ‘개성화’가 소비 측면에 반영된 것이 모디슈머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모디슈머 열풍의 원인을 짚었다. 이어 “즐길 수 있는 식문화가 제한돼 있는 1인 가구의 증가가 식음료 분야에서의 모디슈머 확산을 이끌었고,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도 특정 기호나 취향은 포기할 수 없다는 가치소비가 결합되어 모디슈머가 뷰티나 인테리어 등 분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역으로 기업에서 모디슈머를 적극 활용한다. 단연 외식업계가 가장 분주하다. 이들 기업은 모디슈머를 통한 제품 후기 등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들의 성향을 제품 개발 단계부터 반영하기도 한다. 탄산수, 토닉워터, 플레인 요구르트, 뿌려먹는 치즈 등은 다른 음식과 혼합할 때 베이스로 쓰거나 토핑용으로 활용하기 좋은 것들로 모디슈머 열풍 이후 생산이 크게 늘고 있다. 모디슈모 공모전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한 라면 회사에서는 자사 제품을 활용한 라면 조리법 공모전을 열어 총 1만여 건에 달하는 아이디어를 모았다. 라면에 우유와 치즈를 넣어 크림파스타 느낌을 살린 라면이 1등의 영예를 안았다. 이 조리법은수상자의 캐리커처와 함께 제품 포장에 실렸다.
모디슈머들의 레시피를 제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기업들은 경쟁업체와 손을 잡기도 한다. 라면 제조업체와 참치캔 제조업체, 우유 제조업체와 시리얼 제조업체가 협력했다. 두 개 업체에 편의점이 합세해 유통까지 강화하는 경우까지 나왔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사용자가 여러 제품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DIY(Do It Yourself)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아이섀도와 블러셔를 자유자재로 구성해 하나의 용기에 담을 수있게 한 메이크업 팔레트 등이 그것. 향수 브랜드들은 두세 가지 향수를 레이어링해 전혀 새로운 향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제안한다. 또 다 쓴 향수 용기를 화분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팁을 소비자들에게 역제안함으로써 매출 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인지도가 있는 기존 제품을 활용해 마케팅을 하면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소비자학과 전미영 연구교수는 “제품을 만들어놓기만 하면 무조건 팔려나가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들이 어떻게 제품을 사용하고 활용하고 자신에 맞게 최적화하는지 이제는 기업이 소비자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디슈머 열풍은 우리 사회의 메가트렌드로서 일시적 유행이 아니고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현상”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