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졸업 축하해.” “오빠, 내년에 고등학교 꼭 같이 진학해야지.” “어머니께서 집이 가난해 자식을 중학교에 보내지 못해 한을 품고 돌아가셨는데…. 이제 중학교를 졸업했으니 어머니와 저의 한을 함께 풀었어요. 산소에 졸업장을 바치고 싶습니다.”
“드디어 중학교를 졸업해 정말 기뻐요! 내년엔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꼭 대학에 들어가 무역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2월 13일 서울 아현중학교. 토요일이라 조용해야 할 학교 강당이 들뜬 목소리로 가득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그곳에는 앳된 학생들이 아닌 곱게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할아버지가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3년 동안 함께 공부하며 정이 많이 든 학우들과 언니, 오빠 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느 중학교 졸업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졸업장을 받을 땐 경건한 침묵이 흘렀다. 수십 년 만에 손에 쥐게 된 졸업장에 누군가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피었고, 또 다른 이들은 배우지 못해 겪은 오랜 서러움과 감격이 뒤엉켜 진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광주북성중학교에서 열린 방송통신중 졸업식에서 졸업생이 졸업장을 수여받고 있다(오른쪽은 김재춘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배움의 기회를 잃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방송통신중학교가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식은 총 3개교에서 진행됐으며 아현중 부설 방송중은 2월 13일에, 대구고 부설 방송중과 광주북성중 부설 방송중은 2월 14일에 각각 열렸다. 졸업생은 총 201명으로 아현중 부설 방송중 23명, 대구고 부설 방송중 98명, 광주북성중 부설 방송중 72명, 수원제일중 부설 방송중 5명, 호원중 부설 방송중 2명, 경원중 부설 방송중 1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특히 이 가운데 50~70대가 145명으로 늦깎이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구고 부설 방송중의 전모 씨는 부인, 여동생과 동반 졸업을 하게 됐다. 전 씨는 “방송중 3년 동안 많은 학우를 사귈 수 있어서 즐거웠고, 학교생활을 통해 영어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 아현중 부설 방송중의 베트남 이주 여성 원모 씨도 베트남에서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학업을 가족들의 격려로 다시 시작해 중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아현중 부설 방송중 청소년반 박모 학생은 정신지체 3급으로 네 시간의 통학 거리 등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대한 의지로 성실하게 학업에 임해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대부분의 방송중 졸업생은 방송통신고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서울 아현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2학년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특별공연을 하고 있다
방송중은 중학교 학력을 취득하지 못한 성인과 학교 밖 청소년 등에게 학력 취득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립중학교로 현재 12개 학교에 2074명이 재학하고 있다.
방송중은 2013년 대구고, 광주 북성중을 시작으로 2014년 대전 봉명중, 수원제일중, 의정부 호원중, 창원 경원중, 2015년 서울 아현중, 남춘천중, 원주중, 강릉중, 전주 전라중, 진주중 등 총 12개교로 운영되고 있다. 수업은 방송·정보통신 매체를 통한 온라인 수업과 출석 수업을 병행하며 한 달에 두 번 격주 주말에 출석 수업이 있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일반 중학교와 동일하게 3학년 2학기제로 중학교 일반교과 중심 수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학습경험인정제를 통해 학교 밖에서의 다양한 학습 경험을 인정받으면 최대 1년까지 조기입학 및 졸업도 가능하다.
지난 2월 14일 대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졸업식에서는 총 98명의 학생이 졸업장을 받았다
한편 국민의무교육인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15세 이상 인구는 전국적으로 385만 명(2010년 기준)에 이른다. 교육부는 중학교 학력 취득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시·도교육청과 협력해 올해 3월 8개교(부산 화명중, 인천 구월여중, 울산 학성고, 경기 성남 삼평중?광명중, 전남 목포중앙여중, 순천연향중, 제주제일중 등)를 추가로 개교하고 지속적으로 방송중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다양한 연령의 학생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교육과정 및 콘텐츠 개발, 인성·진로교육, 체험활동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지원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방송중은 초등학교 졸업자나 중학교 입학 자격 검정고시 합격자, 중학교 중도 탈락자, 외국 또는 이북 지역에서 초등학교 해당 학력 이상의 교육을 이수한 자 등이 지원할 수 있으며 거주 지역 인근에 있는 방송중의 모집 요강에 따라 접수하면 된다. 방송중 입학 관련 상담 등은 한국교육개발원 방송중·고 운영센터(1544-1294) 또는 해당 학교로 문의하면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령자들이 방송중을 통해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연령의 학생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