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는 큰 준비없이 훌쩍 떠나기 좋은 곳이다. 부담없이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고 1박2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은 곳이다. 파주, 포천, 안성, 가평 등 전국 어느 곳 못지 않은 다양하고 풍성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포천. 그곳에 오백 년의 신비를 간직한 크고 넓은 숲이 있다. 소흘읍에 자리한 국립수목원이다. 한때 광릉숲으로 더 많이 불렸는데, 그 이유는 수목원 가까운 곳에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와 그의 왕비 정희왕후의 능인 광릉이 있기 때문이다. 수목원에는 900여 종의 식물을 비롯해 곤충, 조류, 포유류, 양서파충류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포천 소홀읍에 위치한 포천 국립수목원
산정호수 둘레길도 추천한다. 호수변을 한 바퀴 돌아가며 만들어진 둘레길 거리는 약 3.5㎞.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산책길로도 연인과 함께 걷는 데이트 길로도 손색이 없다. 둘레길에서는 명성산, 망부봉, 관음산, 사향산을 병풍처럼 두른 산정호수의 풍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 전통시장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경기도 안성의 오일장이다. 끝자리가 2와 7로 끝나는 날, 안성 중앙시장 주변에 Y자 형태로 들어선다. 안성장은 조선시대 대구장, 전주장과 함께 조선 3대장으로 불릴만큼 컸다. 예로부터 안성장은 소를 사고 파는 우시장 또한 유명했는데 시장 한 켠에 있는 식당에서 매콤하고 얼큰한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나면 여름 무더위에 축 늘어진 몸에 힘이 솟는다.
안성 국밥.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파주 역시 자유로를 타면 쉽게 닿는 곳으로 한나절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율곡 이이를 모신 자운서원, 화석정과 함께 헤이리, 보광사, 용미리석불, 임진각평화누리 공원 등을 코스로 엮으면 근사한 여행코스가 탄생한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곳은 심학산이다. 해발 194m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산의 7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심학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 2시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양평 세미원은 여름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면적 18만㎡ 규모의 정원 안에 연꽃으로 뒤덮인 6개의 커다란 연못과, 산책로, 창덕궁 장독대를 모방한 분수대 등 볼거리가 많다. 정원 가운데 자리한 연못에는 백련, 홍련, 가시연, 수련 등 100여 종의 연꽃을 비롯해 가는잎네갈퀴, 생이가래 등 400종의 수생식물이 자란다.
경기도 가평 축령산 자락에는 백련사는 참한 절이 있다. 절이 이르는 숲길이 참 좋다. 울울창창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절집 마당까지 안내한다. 일주문 지나 절 앞에 닿으면 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절이 들어앉은 모양이 마치 흰 연꽃 속에 파묻힌 형국이어서 절 이름을 백련사라 했다고 한다. 절도 좋지만 절 뒤쪽 숲길도 좋다. 절에서 뒤쪽으로 20여분을 올라가면 가평 팔경의 하나인 축령산 숲이 나온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아람드리 잣나무가 사방 4킬로 미터에 펼쳐져 있다. 그대로가 천연삼림욕장인 셈이다.
대한민국 피서 1번지는 역시 강원도다. 깊고 시원한 계곡이 있고 구름을 발 아래 놓을 수 있는 높은 산이 있다. 눈부시게 투명한 물빛을 가진 바다도 우리를 유혹한다. 강원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푸른 바다다. 양양, 강릉, 삼척 등 동해안을 따라 늘어선 도시에는 어김없이 드넓은 해수욕장이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 여름 바다의 낭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해변을 꼽으라면 화진포가 아닐까. 길이 1.7km의 모래사장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오질 않는다. 해변 뒤에 자리한 울창한 송림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강릉이나 양양, 속초의 해변에 비해 한적하다는 점도 화진포 해변의 장점이다.
고성의 백촌막국수는 막국수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곳. 막국수를 주문하면 얼음을 동동 띄운 커다란 동치미 양푼도 함께 나오는데, 이 동치미 국물을 붓고 각자의 취향대로 만들어 먹는다. 구수한 면을 밀어넣고는 동치미를 마시는 맛이 기가 막히다.
양양 남애항은 영화 ‘고래사냥’에서 주인공들이 모래사장을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남애항에서 가까운 하조대 해변은 1.7km에 달하는 길다란 백사장이 좋다. 강릉에서는 커피향 가득한 바다를 만난다. 강릉에는 300여 곳이 넘는 로스터리 카페가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보헤미안. 다크 로스팅과 핸드드립의 대가로 알려진 박이추씨가 운영한다. 커피를 주문하면 박이추씨가 직접 커피를 내려준다. 테라로사에서는 세계 각국의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스페셜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계곡을 찾는 일 역시 강원도 여행의 묘미이자 즐거움이다. 영월 상동에서 정선 만항재 닿기 전 414번 지방도 변에 자리한 칠랑이 계곡은 딴 세상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커다란 바위에는 진초록 이끼가 가득하다. 숲이 빽빽해 한여름 따가운 햇빛도 침범하지 못한다.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골. 시원한 계곡이 여행자들에게 시원함을 더해준다
인제 아침가리골 역시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 구룡덕봉, 가칠봉 등 1200~1400m의 고봉에 첩첩산중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다. 너덜바위 계곡과 전나무숲이 가득한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인데 4시간 정도의 짜릿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아침가리골이 부담스럽다면 방태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보자. 느릅나무, 단풍나무, 당단풍, 물박달나무, 갈참나무, 부게꽃나무, 음나무 등 50여종의 나무들이 빽빽하다. ‘이폭포 저폭포’라고 부르는 이단폭포는 한국에서 가장 멋진 폭포 가운데 하나다.
동해는 계곡과 바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고장이다. 청옥산과 두타산 자락에 자리잡은 무릉계곡은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해수욕장은 망상해수욕장을 추천한다. 해변의 길이가 5km에 달해 ‘명사십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망상해수욕장에서 가까운 묵호항은 동해에서 항구의 정취를 가장 잘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영월 스카이워크. 해발 583미터에서 동강 하늘 위를 걸어볼 수 있다
영월에서는 풍류시인 김삿갓의 흔적을 만나보자. 김삿갓면 와석리에서는 과거시험에서 자신의 조부인지 모르고 조부를 욕하는 시를 썼다는 자책감으로 평생 삿갓을 쓰고 방랑했던 김삿갓의 시비와 묘, 생가, 문학의 거리 등을 볼 수 있다. 김삿갓 유적지 옆에 자리한 조선민화박물관도 추천한다. 서민의 삶이 녹아내린 옛그림 3500점을 감상할 수 있다.
태백에도 아이들이 가볼 만한 곳이 많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 위에 건립된 고생대 전문박물관이다. 삼엽충과 두족류 및 공룡 화석과 자체 제작한 영상물, 입체 디오라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지하 1층에는 화석 발굴 현장, 화석 탁본, 30억 년 지층 파노라마 등 다양한 주제의 체험전시실도 운영하고 있다.
정선 병방산 정상에는 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절벽에 스카이워크가 설치돼 있다. 해발 583m. 말굽형으로 만들어진 스카이워크를 따라 동강 하늘 위를 걸어볼 수 있다. 바닥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후들거린다. 짚와이어도 타보자. 병방산 정상에서 아래까지 1.1km 길이로 설치된 짚 와이어는 알래스카 짚 와이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는 가장 길다.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속도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