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한국화 허백련, 서양화 오지호, 판소리 임방울, 서정시인 박용철 등을 배출한 문화예술의 고장이다. 이를 토대로 아시아 문화 중심 도시를 꿈꾸고 있다. 아시아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할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올해 개관한다.
예술의 거리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300여m에 갤러리와 화랑, 화방, 소극장이 모여 있다. 크고 작은 전시회와 공연도 줄을 잇는다. 토요일에는 풍물 장터인 개미시장이 열린다. 음악회, 공연판도 곁들여진다. 시립미술관과 민속박물관에선 수준 높고 다양한 전시의 장이 마련된다. 민속박물관에서는 광주지역의 민속과 생활사를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다.
양림동에 자리한 이장우 기옥
양림동에 있는 작곡가 정율성의 생가와 거리전시관도 별나다. 정율성은 13억 중국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중국 인민 해방군가’를 작곡한 인물이다. 1937년 이후 중국의 항일투쟁과 함께 탁월한 음악적 업적으로 최고의 중국 음악인 반열에 올랐다.
시 ‘눈물’로 널리 알려진 다형 김현승(1913~75)의 시비는 호남신학대 음악관 옆에 있다.
옛집도 소담스럽다.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이 광주의 옛 부자 동네인 양림동에 있다. 1899년에 지어진 이장우 가옥은 상류 주택 양식으로 안채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집 앞으로 펼쳐진 무등산 봉우리와 어우러진 경관이 한 폭의 그림이다. 최승효 가옥은 1920년에 지어진 독립운동가 최상현의 집이다. 오지호 화백이 살던 초가는 지산동에 있다.
양림교회
선교사들이 광주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양림동에는 양림교회와 오웬기념각, 우월순 선교사 사택 등이 있다. 양림교회는 1904년에 설립됐다. 오웬기념각은 선교사로 광주에서 살다 순교한 클레먼트 C. 오웬(한국 이름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해 1914년에 세워졌다.
주로 교회로 사용됐고 당시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렸다. 근대 광주 문화예술의 전당 역할을 했다. 선교사 우월순 사택은 광주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선교사들의 묘역도 양림산 언덕에 있다. 양림동은 당시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무등산 주상절리
국립공원 무등산은 ‘등급이 없는 산’으로 광주의 정신적 지표다. 증심사는 이 산이 품고 있는 고찰이다. 517년(신라 헌안왕 4년)에 철감선사 도윤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원효사는 무등산 북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원효국사가 암자를 세우고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무등산의 주상절리대도 명물이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바위들이 기둥과 병풍 모양을 하고 있다. 입석대와 서석대, 규봉 등으로 구성된 바위 예술품이다. 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높다.
월봉서원.
월봉서원(빙월당)은 고봉 기대승을 추모하려고 1578년에 세운 건축물이다. 기대승(1527~72)은 퇴계 이황과 12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단칠정을 논했던 당대의 유림이었다. 조선 중기와 후기의 시와 가사문학의 산실이 된 시가문화권은 광주 호반에 자리하고 있다. 환벽당은 나주목사 김윤제가 지어 교육에 힘쓰던 곳이다. 송강 정철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머물면서 공부했다. 취가정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1890년(고종 27년) 후손 김만식이 세웠다.
환벽당에서 다리 하나 건너서 만나는 담양에는 누정(樓亭)이 지천이다. 식영정과 소쇄원, 독수정, 부용당, 송강정, 명옥헌, 면앙정 등이 있다. 식영정은 1560년 서하당 김성원이 지어 장인(석천 임억령)에게 증여했다. 소쇄원은 양산보(1503~77)가 조성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민간 정원이다. 언덕과 골짜기, 돌 등 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정자를 지었다. 송강정은 송강 정철이 당쟁으로 대사헌에서 물러난 뒤 내려와 죽록정을 고쳐서 ‘송강정’이라 불렀다.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광주에서 가까운 담양과 장성, 화순, 나주도 알토란 같은 곳이다. 담양은 송강 정철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원림과 누정을 가꾸며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유서 깊은 고장이다. 한국대나무박물관과 녹원, 대나무골테마파크 등이 있어 생태 관광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정평이 나 있는 메타세 쿼이아 가로수 길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관방제림도 매력적이다. 아시아에서 첫 ‘슬로 시티’로 지정된 창평 삼지내마을도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장성에서는 편백과 삼나무가 빼곡한 축령산 자연 휴양림이 으뜸이다. 천년 고찰 백양사도 사계절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인다. 청렴의 상징이 된 박수량(1491∼1554) 선생의 백비(白碑)는 황룡면에 있다. 고인의 이름과 직위는커녕 글자 하나도 새기지 않은 비석이다.
비석의 주인인 아곡 박수량 선생은 39년을 고위 공직자로 살았다. 어찌나 청빈하게 살았던지 사후 장례비용조차 없었다. 명종 임금이 장례 비용과 비석을 하사하며 “비석에 공적을 나열하지 말고, 그냥 세워놓으라”고 했다. 비문에 이런저런 공적을 새기는 게 오히려 선생의 생애에 누(累)가 될까 우려해서였다.
화순 운주사 와불
화순에는 선사시대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고인돌 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 계곡 10리 구간에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도 여기에 있다. 천불천탑의 신비를 간직한 운주사도 화순에 있다. 누워 있는 와불도 진귀하다. 수려한 경관을 지닌 화순 적벽도 있다. 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로 유배돼온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이름 붙였다.
나주는 고대 영산강 문화를 꽃피웠던 고장이다. 전라도에선 보기 드물게 고분군이 있다. 반남고분군은 백제의 영산강 유역 진출 이전에 자리 잡고 있던 토착 마한 세력자의 무덤이다.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가 버드나무 잎을 매개로 사랑을 느낀 완사천도 나주에 있다. 목사내아, 정수루 등 나주목(羅州牧)과 관련된 유적도 부지기수다.
글·사진 이돈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