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의 재취업. 어려워 보이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21년 동안 한국식품연구원에서 근무한 차성관(67) 책임연구원은 2009년 은퇴했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식품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꾸준히 미생물을 연구했던 터라 헛헛했다. 인생의 과업을 여기에서 끝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식품연구원에 있을 때 유산균에 대한 연구를 했어요. 발효식품에서 미생물을 분리해 활용 가능성을 알아보는 것이었죠. 다행히 은퇴 후에는 유산균을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주)프로바이오닉에 취직했습니다. 제가 식품연구원에 있을 때 쌀로 만든 요구르트에 대한 특허를 냈는데, 그걸 프로바이오닉에서 사갔더라고요. 덕분에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었어요. 아주 보람됐습니다.”
사진제공: 마이구루
차성관 씨가 재취업할 수 있었던 것은 퇴직 과학기술자 활용 중소기업 기술혁신 역량 확충사업 덕분이다. ‘테크노닥터’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이 제도는 (사)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일자리가 없는 퇴직 과학기술자를 연결해준다. 한 중소기업당 퇴직 과학기술자 1명을 선정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10개월 동안 임금을 지원한다. 즉 테크노닥터로 선정되면 첫해에 정부에서 1,800만 원(월 180만 원, 3~12월), 기업에서 700만 원(월 70만 원, 3~12월) 이상을 받아 최소 월 250만 원을 벌 수 있다. 연차별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이듬해와 그 다음 해에도 매년 정부 지원금 2,160만 원(월 180만 원, 12개월)과 기업 지원금 840만 원(월 70만 원, 12개월) 이상을 받는다.
이 제도는 차 씨처럼 공공 연구기관의 선임급 이상 연구원으로 퇴직한 사람뿐 아니라 대기업 부설연구소 책임급(차장), 대학 부교수 이상 퇴직자에게도 열려 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기본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한다. 즉 연구·기술 분야 경력이 10년 이상인 사람으로, 만 50세 이상(2013년 신설)이어야 하고 사업 공고일 3개월 전부터 중소기업에 채용돼 주 3일(하루 8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어야 한다. 이 사업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퇴직 과학기술자를 지원하는 것이므로 이 조건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퇴직 과학기술자를 채용한 중소기업은 4대 보험에 가입한 후 테크노닥터 홈페이지(www.techno-doctor.or.kr)에 온라인으로 참가신청서를 접수시킨 다음 신청서를 출력해 2월 13일까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이공계인력중개센터를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하면 선정 절차를 거쳐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테크노닥터는 2006년 신설된 사업으로 2015년 현재까지 중소기업 910개를 지원해 퇴직 과학기술자 910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중소기업의 수도권, 지방 소재 비율은 각각 37.6%, 62.4%이며 최근 5년간 경쟁률은 3.9:1로 만만치 않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1, 2차 평가를 통해 선발 여부를 가린다. 1차로는 신청 기업과 신청 인력의 적격성을 검토하고, 2차에서는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열어 서면 평가를 거친다. 이때 중소기업은 연구개발(R&D) 투자율, 기업 안정성, 기업 부담금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테크노닥터는 특허, 학회지 게재 논문 등으로 살핀다. 올해는 새로 지원을 시작하는 중소기업과 계속 지원받는 2, 3차년 중소기업을 포함해 70개 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이 지방에 있거나 신기술 인증 혹은 이노비즈 인증을 가진 경우, 퇴직 후 5년 이내 퇴직 과학기술자와 여성 퇴직 과학기술자를 채용한 경우에는 가산점을 준다.
지원 자격이 비교적 다양하다 보니 은퇴하기 전 이 제도를 활용하기도 한다. 동부팜한농에서 시험책임자로 근무한 조인선(50) 씨는 재작년 사표를 던졌다. 팀원들이 퇴사했는데도 결원이 채워지기는커녕 업무가 과중해져서다. 하지만 막막함은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구직 활동을 할 때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활용한 결과 한국생물안정성연구소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노닥터 제도가 재취업의 문턱을 낮춰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