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옷,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해가는 옷을 만드는 게 제 철학이죠. 잘 만들어진 제품은 오랜 시간 사용되며 일생을 함께 할 수 있거든요. 긴 시간 삶과 함께 하는 차별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한국의 패션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습니다.”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편한 옷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탄탄한 브랜드,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장인정신이 담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소신을 가진 남성복 디자이너 기남해 씨(36). 그는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 ‘바스통(Bastong)’을 남성 패션의 ‘성지’라고 불리는 유럽 패션시장에 선보였다. 지난 7월 18일부터 21일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국제 남성복 박람회 제 86회 삐띠워모(PITTI UOMO)에 참여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기 씨는 아우터 브랜드인 바스통을 2011년 세상에 공개했다. 아우터는 총 7개의 컨셉트로 디자인을 구성했다. ‘전사’ ‘개척자’ ‘균형’ 등 컨셉트에 맞춰 단 7개의 스타일만을 선보였다. 바스통의 제품은 모두 핸드 메이드로 ‘한 땀 한 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제작되기 때문에 매시즌 1~2개의 제품만 생산된다. 그만큼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품질이 높은 제품을 제작해 오래도록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남해
기 씨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신진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사업’에 대상자로 선정돼 지난해 6월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삐띠워모’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올해는 한·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가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한 것. 삐띠워모에서는 창의적인 국내 디자이너들의 해외진출을 위한 비즈매칭, 문화와 패션을 결합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됐다.
1972년에 첫 전시를 시작해 올 6월 86회를 맞는 삐띠워모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남성복 전문 박람회로 매년 1월과 6월 2차례 개최되고 있다. 1,100개 이상의 브랜드와 2만 명 이상의 마케터, 1만6,000명 이상의 패션홍보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브랜드들은 부스를 만들어 신상품을 선보이고 바이어들은 자신들이 찾는 브랜드에 거래를 한다. 지난해 ‘삐띠워모’ 행사에 참가한 한국 브랜드들은 이탈리아 현지에서 각국 바이어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27만 달러(약 3억 원)의 상담해 계약을 성사시켜 현지 패션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패션의 본고장인 유럽은 200년 전통의 디자인 브랜드가 많아요. 5년도 채 안된 신생 브랜드에게 현지 바이어들이 사업 제의를 해온다는 것은 특별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죠. 현지 바이어들은 섬세한 동양적 감각을 높이 평가했어요. 바느질 처리부터 동양의 세심함과 꼼꼼함을 느낀거죠. 그렇게 일반 유럽 디자인 기성복과 다른 차별점을 둔 단 한벌을 해외시장에 내걸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이탈리아 ‘삐띠워모’에는 홍승완, 고태용, 서병문 등 국내 대표 남성복 디자이너 7명의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의 특별 전시관 외에도 바스통 등 신진디자이너를 위한 일반 전시관이 운영돼 현지 바이어 및 프레스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서병문
한국 젊은 디자이너의 신선한 감각은 이탈리아 패션업계도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는 ‘삐띠워모’ 행사를 특집으로 소개하며 주목해야 할 ‘톱5’ 브랜드 중에 한국의 ‘바스통’을 꼽기도 했다.
안토니오 크리스토도 삐띠워모 디렉터는 “한국의 패션 시장은 창의적 상상력이라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시장지향적인 젊은 디자이너들이 많아서 매우 흥미롭다”고 밝혔다.
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브랜드 ‘병문서(Byungmun Seo)’의 서병문 디자이너도 현지에서 놀라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는 제 86회 삐띠워모 박람회에서 신진 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뿐만 아니라 Polveriera 특별 전시관 참가 브랜드 8개사로 참여했다. 서 씨는 지난해 1월 처음으로 삐띠워모 ‘New Beat’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소개하는 전시에 참여해 성공적인 성과를 얻게 됐다. 유럽 내에서 한국 패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한국 패션 브랜드가 좋은 성과를 얻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Polveriera 관에서 Korea guest Nation 특별 전시는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바이어, 프레스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한국만의 느낌, 우리 옷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디자인 전면에 세심한 공을 기울였다.
“서양복에서는 현대의복에 정해진 규칙이 있죠. 사람들은 그 규칙에 익숙해져 있고요. 하지만 저는 그 규칙을 깨뜨리고 우리 브랜드만의 룩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 동양 전통의상의 구조에 많은 영감을 받았죠. 동양의상에서 볼 수 있는 의복의 구조를 연구하고 재해석해 현대의복에 적용시켜 새로운 규칙과 구조를 표현했어요.”
서 씨는 해외로 뻗어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국내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잊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유통을 위해 브랜드와 바이어들이 세일즈을 시즌보다 일년 먼저 시작해 충분한 생산 기간과 재고 생산 계획을 세워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했어요. 보다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유통과 세일즈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유통 형태와 본 시즌보다 일년정도 더 일찍 기획하고 바잉(Buying)이 이루어져야 해요. 또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차별화된 브랜드 기획도 중요하고요.”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한국 패션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진행된 이번 행사는 실질적인 비즈니스로 연결돼 글로벌 패션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다. 정부는 신진 디자이너 판로개척 지원사업 등을 통해 한국의 역량 있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지속적으로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