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버지로서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순간이 벅차기는 했지만, 딸아이는 ‘내가 신랑 쪽에 물건처럼 넘겨지는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돌이켜 생각하니 신랑, 신부 모두 성인인데, 친정아버지가 사위에게 딸의 손을 건네주는 건 남성 중심 가족 문화에 기반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딸은 자신의 의지로 결혼 ‘하는’ 것이지, ‘시집 보내는’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김○○,남,72,마포구)
# 장례식장에서 부고를 작성하러 아드님이 오라고 했다. 우린 딸만 넷이라 내가 가겠다고 하니 사위님을 보내라고 했다. 우리 자매는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아 사위가 없다고 재차 말하자 ‘정말 아들도 사위도 없냐’며 ‘요즘 그런 집들이 생겨서 자신들도 곤란하다’고 했다. 상조회사 직원 역시 상주를 찾았다. 아들도, 사위도 없으니 큰언니가 상주를 할 거라고 하자 ‘조카라도 계시면 그 분이 서시는 게 모양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여,40, 서대문구)
# 삼촌과 아빠가 동생에게 할머니 영정사진을 들라고 했다. 사진은 손주가 드는 거란다. 동생은 나를 보며 ‘누나도 있는데…’라고 말했지만, 삼촌과 아빠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영정사진은 내가 들고 싶었다. 몇 걸음 걷지 않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손주가 들어야 한다면 할머니와 가장 오래 함께 했고,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내가 제일 어울리지 않나? (양○○,여,33,종로구)
서울시가 의례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면서도 변화하는 의식과 다양한 가족 현실을 반영한 결혼·장례문화 확산을 위해 진행한 공모전 결과를 발표하고 온라인 캠페인에 나선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시민에세이 공모전’을 열고, 지난 5월 3일부터 6월 30일까지 시민들의 에세이를 접수받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분야별 수상자 21명을 최종 선정했다. 수상자는 최우수상 3명(결혼식 불편사례, 장례식 개선사례, 장례식 불편사례), 우수상 13명, 특별상 5명이다.
결혼식 불편사례 분야 최우수상은 <정상가족을 찍어내는 결혼식장>이 선정되었다. 남동생 결혼식에서 이혼 후 왕래가 없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숨기려 한 일화를 소재로 삼은 에세이이다.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면 아버지 자리에 외삼촌 대신 누나인 자신이 앉았으면 어땠을까 제안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장례식 개선사례 분야 최우수상은 <우리는 진짜야>가 선정되었다. 비건이었던 지인의 장례식 식사가 비건식이 아니었고, 발인식 때 장례지도사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조문객들이 지적했던 사례들을 들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장례식 불편사례 분야 최우수상은 <슬프고도 불편했던 10월의 어느 사흘>이 선정되었다. 할머니와 누구보다 가까웠던 맏손녀로서 영정사진을 들고 싶었지만 남동생에게 역할이 주어졌던 일화를 소재로 장례식 내내 배제당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수상작 중 결혼 분야 에세이는 10편, 장례 분야 에세이는 11편이다.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9월 6일부터 시민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을 재구성한 스토리 카드뉴스를 발행하는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 온라인 캠페인을 연다. 온라인 캠페인은 9월 6일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_결혼편> 스토리 카드뉴스를 시작으로, 9월 13일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_장례편>으로 2회에 걸쳐 진행된다.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_결혼편> 스토리 카드뉴스는 시민들의 사례 중 개선 사례를 중심으로 직접 실천할 수 있는 7가지 실천 사례를 제안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제는 바꿔야할 의례문화_장례편> 스토리 카드뉴스는 시민들의 사례 중 불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2회에 걸친 온라인 캠페인 모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댓글 이벤트를 진행한다. 심사를 통해 재치댓글상, 감동댓글상, 참가상을 선정해 소정의 상품도 지급한다.
캠페인은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 홈페이지(www.seoulgenderequity.kr)에서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02-6258-1024)로 문의하면 된다. 또한, 9월 말, 시민에세이 공모전 선정작을 ‘우수사례집’으로 묶어 발간할 예정이다.
김선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시대가 변하고 가족 구성원이 다양해지면서 이에 맞는 결혼식, 장례식 문화가 발굴, 확산되어야 한다”며, “서울시는 의례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면서도 모두가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결혼식, 장례식 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글=박인수 기자(rlaqudgjs930@naver.com)
ⓒ 시니어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