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기대는 컸지만 현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시니어 시장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니어 소비자들이 정작 시니어 상품 구매를 꺼리고, 기업들이 시니어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면도 있다. 기업들은 연령 차별적 시각이 아닌, 포용적인 관점에서 좀더 정교한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미국 뉴욕주 퀸즈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매니저가 한인 노인들과 갈등을 빚은 사건이 있었다. 노인들이 커피를 시켜놓고 하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경찰을 불러 한인 노인 6명을 내쫓은 것이다. 결국 맥도날드 측이 노인들을 쫓아낸 매니저를 교체하고 노인들에 좀더 배려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의 성의를 보였고, 한인 노인들도 사과를 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은 뉴욕타임즈에 기사화되면서 미국 내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면, 미국에 거주하는 노인들도 편안히 싼 값으로 시간을 보낼 장소가 맥도날드 이외에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다 -물론 해당 매장 매니저 개인의 특성이 작용했겠지만- 노인 고객들이 매우 귀찮고 돈 안되는 고객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고령 소비자가 처한 씁쓸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고령자들은 시간과 돈이 있어도 소비할 곳이 마땅치 않고, 비록 기업들이 이런 시각을 겉으로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이들에게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고령화는 일찍부터 기업들에게 많은 사업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련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사진제공: 임팩트
기대와 실제의 차이
많은 기업들이 고령 소비자를 거대한 사업기회를 가져다 줄 집단으로 지목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고령자들은 신체적/정신적 특징이 젊은 세대와는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 기존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다, 고령자들은 은퇴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을 것이다, 고령자들은 금액이 적더라도 안정적 소득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고령자들일수록 건강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등등 매우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기대는 기업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되었다. Economist 산하 연구소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2011년 1~2월 전세계 583명의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수명의 증가가 앞으로 5년 내 귀사의 사업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까?’라는 질문에 조사대상 기업의 7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경영자들은 수명연장에 따라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으로 헬스케어/의약-레저/관광-금융서비스-음식료 등을 지목했다.
그렇지만 실제 사업에서 기업들이 시니어 소비자들의 수요를 잘 이해하고,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는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같은 EIU 조사에서, 향후 5년 이내에 65세 이상 고령자 대상 제품/서비스 판매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 경영자들은 68%였으나, 이 중 48%만이 고령 소비자 그룹을 핵심 고객층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비율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니어 시장의 실체
기업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저조한 것에 대해서 단지 왜냐고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왜냐면, 기업들도 시장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시장의 실체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시니어 시장’ 이라고 칭할만한 카테고리가 정말 존재하냐는 것이다.
전세계에 걸친 학계의 연구자들, 시장조사기관이나 언론 등에서 이 시장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많은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관련된 보고서와 기사 등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사실 과거에는 ‘시니어 시장’보다는 ‘실버 시장’으로 많이 언급해 왔다. ‘실버’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쓰기 시작해서 1990~200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활용되었지만, 최근에는 ‘실버’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시니어’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본은 ‘단카이 비즈니스’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단카이 세대(團塊世代)는 1946년에서 1949년에 태어난 세대로, 1970~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낸 세대이다. 미국에서는 ‘Senior Market’이라기보다는 ‘Baby Boomers Market’으로 지칭한다. 유럽에서도 대체로 미국과 비슷한 용어를 사용한다.
시니어 시장을 정의하고 그 규모를 추정하는 데 있어 산업별로 나누어 규모를 추정하는 방법이 많이 쓰이지만, 각 산업별 상품의 구체성과 다양성에 있어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여러 연구기관에서 많은 예측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한 추계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에서 관련 시장 육성과 관련하여 ‘고령친화산업’으로 명명한 산업의 규모를 2010년 기준으로 약 33조 원으로 추산했다.
일본도 한때 민간연구기관이 시니어 소비가 100조 엔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발표하여 한동안 시니어 시장이 ‘100조 엔의 시장’으로 통했다. 하지만 이런 추계는 허점이 있었고, 지금은 일본 내에서도 시장 규모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의견이 많다. 이처럼 시니어 시장은 그 카테고리를 정의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고, 대략적인 시장의 규모를 추산하는 것도 매우 힘든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시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고, 실제 사업 수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시도들이 있었나
모호하고 불확실한 시장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시니어 시장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례가 다양하지는 않으나, 현재 나와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준으로 기업이 접근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원래 존재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시니어 소비자를 위해 상품을 최적화하는 경우이다. 다음으로, 시니어들의 필요에 기반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일반 소비자와 시니어 소비자를 차이를 두지 않고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우이다.
● 시니어 맞춤으로 최적화
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빠르게 할 수 있는 시도는 기존 상품에 변화를 주거나 마케팅 방법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들을 고령 소비자들에게 최적화된 형태로 기능이나 형태를 변형시킴으로써, 이들의 선호나 니즈에 대응하는 것이다.
많이 언급된 사례 중 하나가 휴대폰이다. 휴대폰의 글자키를 크게 만들거나, 스마트폰에 시니어들을 위한 ‘간편 모드’ 기능을 삽입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시니어들이 대체로 시력이 좋지 않고, 젊은이들만큼 IT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과거 시니어들에 비해 현재 시니어들의 선호는 좀더 세련되어졌다는 판단하에 제품의 특징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Kimberly Clark의 대표상품인 Kleenex는 제품의 플로럴 부케 향을 줄이고 디자인을 현대적인 것으로 바꾸는 등의 시도를 하였다.
고령화의 추세를 인지하고 인접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분야를 발굴하여 확대하기도 한다. Coca-cola는 일찍이 1980년대에 커피/차, 와인, 오렌지주스 시장에 진출했는데, 고령 소비자들은 Coke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Coca-cola는 2009년 스무디 음료와 야채주스를 생산하는 Innocent를 인수하기도 했다.
● 시니어만을 위한 새로운 카테고리 창조
두 번째 방법은 기업들이 기존에 없었던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시니어들은 신체적, 정신적 퇴화를 경험하게 되고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한데, 혁신적인 기술이나 접근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의약이나 헬스케어, I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 분야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Intel은 GE와 함께 텔레헬스(원격의료)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Care Innovations를 설립하는 등 IT기업으로서는 빠른 행보를 보였다. 고령자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TRIL(Technology Research for Independent Living)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Philips는 고령자들이 자신의 집에서 질병을 치료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고령의 환자들이 좀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활용품이나 식품산업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관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Kimberly Clark의 Depend는 성인기저귀 시장을 창출하여 성공한 사례이다. 요실금 관련용품 시장은 2020년이 되면 약 17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Depend는 일찍이 이러한 수요를 인지하고 새로운 사업영역을 창출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Danone은 Medical Nutrition 자회사인 Nutricia를 통해 시니어를 위한 영양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주로 이동성을 향상시켜 주는 근력강화 제품이 주력이며, 시니어들의 식습관과 영양상태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 ‘Age-neutral’ : 시니어 포커스를 하지 않음
일반 소비자와 시니어 소비자의 소비가 다르지 않다는 가정 하에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같은 방식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말한다. 시니어 소비자들을 위해 특별한 변형이나 창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즉 연령 구분 없이 사용되는 상품들인데, 기존에는 많은 소비재 기업들이 이러한 전략을 취해 왔다.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
김병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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