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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 시인 할머니 “맨날 맨날 기도혀요, 나라 잘 되라고”

완주군 동상면 입석마을 백성례 할머니, 감동의 시집으로 유명세

입력 2021년06월29일 16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입석마을에 사는 101세 국내 최고령 시인 백성례 할머니의 주름 진 얼굴이 활짝 피었다. 국내 8대 오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가슴 안에 맺혀 있던 겹겹의 한(恨)을 5편의 시로 풀어냈던 할머니의 구술(口述)이 ‘홍시 먹고 뱉은 말이 시가 되다’라는 시집(詩集)에 수록된 이후의 변화이다.

 

암것도 바랄 게 없고 / 그냥 그냥 웃고 살지 // 아들딸 걱정할까 / 아플 것도 걱정이여 // 아, / 팔십 먹은 할매들도 / 치맨가 먼저 잘 걸린댜 // 나도 안 아프고 / 영감 따라 후딱 가는 게 / 소원이여 –백성례(100세 할머니의 소원)


 

올 4월에 비매품으로 출간된 국내 최초의 ‘주민채록 시집’은 오지마을 어르신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어 전국적인 선풍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입석마을에서도 최고령이신 백 할머니의 아픈 삶의 파편이 녹아든 시는 진한 감동을 줬고, 할머니는 그렇게 유명인이 됐다.

 

시집 발간 이후 할머니의 삶은 180도 완전히 바뀌었다. 방에서 시무룩하게 앉아 계셨던 종전과 달리 집 앞 텃밭도 가꾸고 동네도 한 바퀴씩 돌며, 특히 웃음이 많아지셨다.

 

며느리 원영수 씨(58)는 “시집이 나오기 전에는 주로 방에만 계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시다”며 “가슴에 담아 두셨던 100년의 한을 시(詩)로 풀어내신 덕분인지 안색이 좋아지셨고, 활동도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하루는 아침 기도로 시작된다. 기도의 내용은 시에 잘 담겨 있다.

 

맨날 맨날 기도혀요 // 나라가 잘되라고 / 기도허고 // 대통령이 잘허라고 / 기도허고 // 정부도 잘허라고 / 기도허고 // 아들딸 며느리도 잘되라고 / 기도혀요. -백성례(100세 할머니의 기도)

 

아들 유경태 씨(63)는 “시에 들어있는 ‘나라 사랑’ 마음이 어머니의 진짜 순수한 마음”이라며 “맨날(매일) 저렇게 기도 하신다”고 말했다. 유 씨는 “어머니께서 아들딸 잘 되라고 기도 혀서 약발이 맥혔는지 올해 산에 놓은 벌통 열두 개 안에 벌들이 유난히 많이 들어왔다”고 환하게 웃었다.

 

백 할머니는 25일 필생의 소원 하나를 풀었다. 오지 마을에 사신 탓에 군청 한번 방문하는 게 소원이셨던 할머니가 이날 오후 완주군청을 찾아 ‘100세 할머니의 기도’ 시집 액자를 박성일 완주군수에게 깜짝 선물했다. 박 군수도 생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였다.

 

백 할머니는 “일제, 6.25, 수몰지역 삶의 아픈 이야기를 책으로 맹글어(만들어)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던 한을 다 털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행한 며느리 원 씨는 “어머니의 살아오신 이야기가 시가 되고 책이 되니 온 동네에 웃음꽃이 피었다”며 “이게 바로 문화이고, 완주군이 왜 문화도시로 선정됐는지 잘 알겠다”고 말했다.

 

박 군수는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역사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며 “한 세기의 삶을 살아오신 백 할머니께서 방문해 주신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꼼꼼히 챙겨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속을 다 훑어내니 후련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혀.” 군청 출입문을 나서던 백 할머니의 주름 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빛을 발했다.

 

글=신호숙 기자(smkim24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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