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60세 의무화 법안 통과
작년 4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16년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2017년에는 모든 사업장이 60세 정년 제도를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현재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제도화해 놓은 평균적인 정년이 57세이고 실제 퇴직 연령은 약 53세인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이 법이 적용된다면 어림짐작해 보아도 지금보다 적어도 3~4년 이상 직원들의 퇴직 시점이 늦춰지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 내 고령 인력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비단 60세로 연장되는 것뿐만 아니라,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하여 가까운 미래에 정년이 더 연장될 수 있다. 1994년 60세 정년 의무화 법안을 도입했던 일본은 2013년 4월부터는 ‘고령자 고용안정법’ 시행을 통해 65세까지 의무적 고용을 제도화 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정년 연장은 고령자들에 대한 국민연금 지급 부담을 가능한 줄이기 위한 목적도 크기 때문에 국민연금 지급 시기를 뒤로 미루면서 진행되었다. 북유럽 등과 같은 복지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령자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일본은 기업이 고령자들에 대한 고용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사회 안정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향후 정년 연장의 제도화 문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들이 단순히 법안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으로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조직 내 고직급 인력 증가
법제도적 환경 변화와 함께 고령화 이슈가 기업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조직의 인력 구조 측면일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신규 채용은 감소하면서 고직급자 비중이 늘어나 인력 구조가 전통적인 피라미드(△) 형태에서 역(逆)피라미드(▽)로 빠르게 바뀌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박희준교수가 한 제조기업을 상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1, 최근 5년간 성장률과 승격률, 자연 퇴직률 등이 유지되면서 정년이 60세로 연장될 경우, 해당 기업의 인력 구조는 간부 직급의 비율이 2012년 49.1%(부장 7.2%, 차장 14.2%, 과장 27.7%)에서 2025년에는 64.6%(부장 23.3%, 차장 19.1%, 과장 23.2%)로 증가한다고 한다. 대리, 사원급이 34%에 불과하고, 관리자 직급의 비중이 더 많아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많은 기업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고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더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조직의 활력이 약화되거나 변화·혁신 수용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인력 구성이 달라지는 만큼, 기존의 직무 구분, 직급 체계, 조직 관리 방안 등이 새로이 수립되어야만 변화하는 인력 자원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제공: 고양시청
△개인의 인식변화
사회의 변화와 함께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도 주목해 보아야 할 포인트이다. 평균 기대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개인이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해야 하는 금전적, 정신적 니즈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간 재직을 중시하는 풍토가 생겨나고, 직장에서 큰 성공을 추구하기 보다는 급여를 적게 받더라도 소위 ‘가늘고 길게 가자’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지방은행에서는 임원으로 승진하는 발령을 내겠다고 해도 그냥 부장으로 있겠다며 승진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임원으로 1~2년 일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 보다는 부장으로 정년까지 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년 연장 법안통과로 장기근속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도 커졌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정년 60세 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직장인 1,5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2013.6), 직장인들의 체감 정년은 평균 53세에서 57세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직장 내에서 장기간 근속하는 것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조직의 활력(Vitality)을 유지하기 위한 기업의 고민 또한 커질 수 밖에 없다. 구성원들이 동기(Motivation)와 주도성을 잃지 않으면서 근속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고령화를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교육·훈련을 통한 지속적 역량 강화 고령 인력의 취약점으로 가장 먼저 지적되는것은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늦고 역량에 큰 발전이 없이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업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고령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는 트렌드, 새로 등장하는 지식 등을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하고, 개인별로 부족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고령 인력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기보다 기존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편견부터 벗어 던질 필요도 있다. 실제로는 고령 인력들도 젊은 구성원들만큼 역량 개발에 대한 욕구가 높다는 점이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맞이한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의 지멘스는 구성원의 고령화 및 시니어 인력의 역량 개발에 대한 니즈를 인지하고, ‘컴파스 프로세스(Compass Process)’라는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먼저, 자신의 강·약점에 대하여 상사, 동료, 고객으로부터 전면적인 피드백을 받고, 컴파스 워크숍을 통해 이를 분석하여 구체적인 경력 개발계획을 수립한다. 경력계획의 현실성 등을 경영진, 인사팀과 검토하고 그 계획에 따라 경력개발을 진행한 후, 수개월이 지난 뒤 2차 워크숍을 통해 개인별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추가적인 방안을 수립한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에 의하면, 동료들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점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직에서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발견하게 되고, 향후 진로계획 등을 수립하여 전직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근무 환경 조성 고령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보다 신체적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구성원의 고령화가 반드시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고령 인력에게 적합한 작업 환경 구축을 통해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향상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7년 독일의 딘골핑(Dingolfing)에 위치한 BMW 제조공장에서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예상되는 생산성 저하에 대응해야 했는데, 2007년 당시 39세였던 평균 연령이 2017년에는 47세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었다. 경영진은 고령화가 진행된 상황에 맞추어 조립 라인과 프로세스를 재설계하고, 2017년에 예상되는 평균 연령별 인력 비율로 직원들을 구성하였다.
환경을 개선하는 ‘2017 Ergonomics’ 프로젝트의 개선점은 총 70가지로,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고 전기 충격을 줄이는 나무 바닥, 신체의 무리를 줄여주는 이발소식 의자, 시력에 도움을 주고 품질 에러를 줄이는 확대경 등 고령자의 근무 효율을 높이는 여러 장치를 고안하여 도입하였다. 총 50,000달러의 비용이 소요된 이 프로젝트는 연간 생산성을 7% 향상시켰으며, 결근률도 동종업계 수준이었던 7%에서 2%로 하락하였다. 동사는 딘골핑 공장의 사례를 미국, 독일, 호주 등의 다른 공장에도 도입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 최대의 의약 유통 체인 CVS 케어마크(CVS Caremark)는 고령 인력들이 계절에 맞게 근무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동사는 1990년대부터 인구 고령화에 주목하며 다양한 고령 인력 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근무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피한객(避寒客) 프로그램(Snowbird5 Program)을 2004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CVS는 미국 41개 주에서 7,300여 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 어떤 기후의 지역에서도 매장을 찾을 수 있다.
직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기후대의 매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였고, 프로그램 도입 이후 매장점원, 약사, 간부급 관리자 등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였다. 모든 구성원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용자의 상당수가 따뜻한 미국 남부에서 겨울을 보내고 북쪽 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고령자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은 고령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여 직원들의 만족도를 상승시키면서도, 회사가 계절별 매장의 고객 수 증가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었다.
△유연 근무제의 활용
지속적으로 고직급자가 늘어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고령자의 임금 등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편, 구성원들 중에는 직장 생활을 지속하고 싶으나 체력적 한계가 있는 고연령자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유연근무제(Workplace Flexibility)가 될 수 있다. 유연 근무제도는 기존의 정해진 장소, 시간에 근무하던 제약을 없애고 좀 더 탄력적으로 구성원의 니즈에 맞게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기업은 고령 인력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필요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고, 개인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직업을 유지하면서 정신적 만족과 금전적 소득을 함께 얻을 수 있다.
영국의 통신회사 브리티시 텔레콤(British Telecom)은 ‘Achieving Balance’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 근로자들이 본인이 처한 상황에 맞는 근무 형태를 선택하면서 단계적으로 업무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모든 근로자들이 활용할 수 있지만 특히 고령자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5가지 단계로 업무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①Wind Down: 개인 시간을 늘리고 업무시간을 줄임, ② Step Down: 책임과 권한이 좀 더 적은 직무로 변경, ③ Time Out: 최대 2년 까지 휴직 또는 안식년 선택, ④ Helping Hands: 최대 2년 까지 자선 단체 파견 근무, ⑤ Ease Down: 단계적으로 책임과 권한의 단계를 낮춰가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근무 형태를 선택하여 몰입하며 근무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은 낮추면서도 고령자의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동사는 이외에도 다양한 고령 인력 지원 및 활용 프로그램을 통해 2011년 미국 은퇴자협회(AARP)로부터 ‘Best Employer for Workers Over 50’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직무급제 도입 고려
이제는 장기적 관점에서 직무급제로의 전환을 고려해보아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먼저, 우리 기업의 대부분이 연공급제에 기반한 직능급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추이대로라면 고직급자가 점점 증가하여 기업에게는 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