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상덕이 2013 부천시 문화예술발전기금을 지원받아 단편소설집 ‘무서운 학교’를 발간했다. ‘무서운 학교’를 포함, ‘오감도’, ‘피그말리온’, ‘산장으로 온 형사’, ‘산장에서 도를 이야기하다’, ‘교육사회학 강의실’, ‘스무 살의 추억’, ‘위작은 사절합니다’, ‘몰래편지’까지 총 9편이 수록되었으며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부조리한 구조, 그리고 인간의 내적 욕망, 우리들의 삶을 자극하고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사건들로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다.
“학교에 꿈이 있을 리가 있나요? 생각해보니까 우리는 12년을 학교 다니면서 왕 뽑아주는 백성노릇만 하게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꿈도 없어진다는 걸 알았죠. 조선시대 백성들한테 무슨 꿈이 있었겠어요? 우리는 모두 속고 있는 거죠. 이 사실을 알려서 세상을 뒤집어엎을 겁니다.” - ‘무서운 학교’ 중에서
‘무서운 학교’는 학교를 다닐수록 꿈이 사라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발견한 학생들의 비극적 사건을 통해 학교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계급사회가 왜 여전히 은밀하고 견고하게 존재할 수 있는지, 희생양이 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10대들의 고민과 결국 마주쳐야만 하는 운명을 담담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천재 시인 이상의 난해한 작품 세계를 대혁이란 인물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 ‘오감도’와 영화감독이 된 어린 시절의 친구 봉규와 애틋한 감정만 남기고 떠난 옥화를 회상하면서 피그말리온 효과를 역설하는 ‘피그말리온’, 희대의 살인마 방의 유전자는 한 남자의 희망처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척결될 수 있었을까?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린 두 남자의 만남, 잘 짜인 구성이 돋보이는 ‘산장으로 온 형사’, 도를 깨우친다는 도가면을 파는 ‘구도가’에 낯선 손님이 찾아오면서 도에 대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산장에서 도를 이야기하다’에 이어 ‘교육사회학 강의실’은 교육이 계층이동에 기여해야 하는지 대학원 강의 형식을 빌려 문제를 제기하고 교육의 본질에 대해 날선 토론을 하면서 독자가 문제에 답하도록 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스무 살의 추억’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꿈을 잃고 사라져야만 했던 명덕이란 인물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며, 거짓과 진실 앞에서 힘든 선택을 해야 하는 삼류화가의 이야기를 다룬 200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위작은 사절합니다’, 그리고 공장 여사원을 짝사랑하여 스무 통이 넘는 편지를 쓰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에 절망하는 사랑 이야기 ‘몰래편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9편의 단편소설들은 저마다 개성적인 사건을 품은 채 독자들에게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소설들은 대체로 ‘낯설게 하기’의 구성방법을 취한다. 탄탄한 플롯과 정제된 문체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어볼 기회가 없는 듯 느껴지는 독특한 사건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주제를 문제화 시키고 독자에게 계속해서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작품으로서의 묘미뿐만 아니라 내재적 비평 대상으로서의 묘미가 깊은 작품들로 평할 수 있다. 뚜렷하고 명백한 가치관을 가지고 소설을 끌어가면서도 결론은 독자가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상덕의 소설집 ‘무서운 학교’는 거짓과 위선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세상을 한 꺼풀 벗기고 본질과 진실에 한 발짝이나마 더 다가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