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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에 등재된 60년 외길 ‘세탁명인의 인생’ 화제

“건강 허락할 때까지 세탁-봉사의 삶 살고 싶어요”

입력 2020년11월27일 19시34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40여 년 된 ‘부라더 미싱’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올해로 60년째 세탁업을 해온 ‘일진사(日進社) 세탁소’의 이낙교 대표(79)가 가장 아끼는 가보 같은 재산목록 1호이다.

 

완주군이 최근 이 가게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세탁소’로 ‘완주 기네스’에 등재하면서 국내 동종업계의 산증인이자 역사인 이 대표의 ‘세탁명인(名人) 삶’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중학교 졸업 후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을 포기한 그는 집에서 놀다 1961년 열아홉 청춘에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세탁소에 간 것이 한평생 세탁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가 됐다. 기술이라도 배우자는 심산에 세탁 보조로 들어갔는데, 2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빨래만 하는 지독한 고생의 연속이었다.

 

한 겨울에 세탁소 마당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손빨래를 하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몰래 어깨 너머로 직접 세탁 기술을 익힌 그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인근의 작은 가게를 임대로 얻어 세탁소를 개업했고, 동네친구들이 ‘매일 발전하라’는 뜻의 ‘일진’이란 간판을 달아 주었다.

 

60년대 초반 동네 세탁소는 19공탄 연탄화덕에 1.5㎏짜리 무쇠 다리미 2개를 얹어놓고 번갈아 사용하며 옷을 다렸다. 좁은 가게에서 연탄가스를 마셔가며 일을 하던 중 스물일곱의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을 앓는 시련을 겪게 된다. 이후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고,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고객의 신뢰를 쌓아갔다.

 

“세탁소는 겨울보다 여름이 힘들어요. 선풍기도 없이 연탄불에 다리미를 달궈야 하니 땀이 비 오듯 주룩주룩 흘러 내려요. 뜨거운 자루를 자주 만지니 손에 지문마저 없어졌어요. 그래도 손님과의 약속은 꼭 지켰습니다.”


 

의류가 귀했던 70년대 동네 세탁소에서는 여러 해프닝이 많았다. 맡기지 않은 비싼 옷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거나, 점퍼를 찾으러 왔다가 다른 사람 바지를 슬쩍 하는 일도 발생해 대신 옷값을 물어주기도 했다. 다섯 번의 이사 끝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그는 1982년 삼례시장 청년몰 맞은편에 지금의 가게 문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이 없었다. 70년대 말에 등장한 최초의 자동세탁기는 80년대 들어 점차 일반가정에 보급됐고, 세탁소의 일감은 줄어들었다.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예열된 다리미를 잘못 놓고 잠이 들어 세탁소에 불이 나는 위기의 순간을 경험하고 심기일전했다. 한살 연상의 아내도 어려워진 생계를 위해 새벽에 서울 동대문 시장을 찾아 의류를 다량 구매해 우체국이나 병원 직원 등에게 소매 판매하는 등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이 대표의 성실과 축적된 세탁기술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단골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 예복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때, 자신의 양복을 잘 다려 공짜로 빌려줄 정도로 따뜻한 세탁소라는 소문도 한 몫 했다.

 

급기야 90년대 들어서 봉동읍과 상관면, 심지어 익산 왕궁면과 춘포면, 전주시 팔복동 등지에서 삼례 5일장을 보면서 옷을 맡기는 고객까지 크게 증가했다.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긴 그는 주변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부인과 함께 남몰래 봉사활동에 적극 나섰으며, 시설에 생필품과 쌀 등을 전달해 오고 있다. 작은 후원부터 보이지 않는 선행은 이웃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돌아보면 고생, 퍽이나(많이) 했어요. 60년 동안 다른 일을 했으면 돈을 더 벌었을 텐데…. 그래도 아내가 잘 참아줘서 고맙고, 하나 있는 아들도 잘 커줘서 고맙고, 꾸준히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들도 고맙지요.”

 

‘가게 대표’보다 ‘장로님’으로 불러달라는 그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세탁일과 봉사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글=이충렬 기자(rlaqudgjs88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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