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과 폐암의 개별 인과관계”를 쟁점으로 하는 제4차 변론(5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앞두고 4월 6일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역학적 증거가 가지는 의미”(오후 1시 30분, 공단 지하 강당)를 주제로 국내외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공단 담배소송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국내외 역학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자리로, 대한금연학회, 대한예방의학회, 한국역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보건의료계에서 이미 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진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가, 왜 법정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는지, 법원의 판단과 담배회사들 주장의 문제점 등을 전문가들의 시각에서 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공단 담배소송의 공동대리인인 법무법인 남산의 정미화변호사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에 대한 쟁점들을 발표한 뒤, 역학에 관한 포괄적인 철학적 논의를 최초로 제시하여 과학철학의 한 분야로 개척해 냈다는 점에서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던 ‘역학의 철학’의 저자인 요하네스버그대 알렉스 브로드벤트 교수와 국제역학회지 편집위원인 서울의대 강영호 교수,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소희 교수가 연이어 발제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담배회사들은 한결같이, 흡연과 폐암의 인과적 관련성에 대한 근거들은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역학적 연구에서 나온 통계적 관련성에 불과하여, 개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며, 장기간 흡연을 하더라도 모든 흡연자에게서 폐암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흡연 이외에 다른 원인(대기 오염, 식이습관, 음주, 석면 등 유해물질 및 직업적 노출, 가족력 등)이 관여하므로, 흡연이 폐암 발병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알렉스 브로드벤트 교수는 “역학적 증거로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렇다”고 단정하면서, “만일 역학적 증거들이 흡연과 폐암의 일반적인 인과관계를 나타내면서, 그것이 개인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주장 자체로 논리적 오류이다”라고 지적하고, 또한 역학적 증거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개별 사건에서 구체적인 확률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폐암 중 선암의 경우 흡연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역학적 증거를 개별적 인과관계에 적용할 수 없다면 이를 토대로 흡연자가 폐암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 흡연을 중단하는 조치마저도 불합리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역학 전문가인 강영호 교수는 “집단과 개인에서의 담배와 폐암의 인과성: 담배소송의 쟁점을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담배회사들 주장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역학 연구결과를 ‘통계학적 연관성’으로만 치부하면서,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에 대한 역학의 역할을 폄훼·제한하려는 주장에 대하여, 역학은 질병 발생의 원인 또는 인과성 문제에 대한 학문적 전문성을 가진 의학 및 보건학 연구 분야로서, 역학적 연관성 지표 활용을 포함하여 동물실험 결과, 개인의 병리학적 관찰 결과, 화학 실험결과 모두를 인과적 추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역학 연구 결과를 단지 ‘통계학적 연관성’으로 한계 지으려는 것은 역학 연구 결과를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에 대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한다.
또한 국제역학회의 역학 사전에도 이미 나와 있는 ‘인과확률(probability of causation)’의 개념을 통해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을 개인에게 바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인과확률은 특정 개인의 질병이 폭로(노출) 요인에 의하여 발생하였을 확률로서, 개인 수준에서의 확률을 의미하므로 역학 연구를 통해 관찰된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을 개인에게 직접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폐암 환자 중에서 비흡연자가 있고, 전체 흡연자 중에서 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그 일부라는 담배회사들의 주장에 대하여도, 이는 개인 간 변이에 대한 논의에 불과할 뿐이지, 위험 요인과 질병의 인과적 관련성의 크기에 대하여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담배회사들이 폐암이 흡연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는 비특이성 질환이라는 전제 하에, ‘A가 없으면 B도 없다’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으나, B라는 질병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하는 A라는 원인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고 반박하는데, 한 가지 원인만으로 일어나는 질병이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암에 대한 기여위험도가 90%인 흡연의 경우에는, 이를 특이적인 요인으로 보아야 하고, 이번 담배소송에서 문제되는 폐암 중 편평상피세포암과 소세포암은 그 특이적 성격이 더더욱 크다고 강조한다.
이어 연세대 보건대학원 박소희 교수가 “폐암에 대한 흡연의 기여위험도 산출배경 및 결과 해석의 유의점”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발제를 한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지난 변론에서, 2014년도 국립암센터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대위험도와 기여위험도가 크게 낮고, 이는 결국 폐암 발병에 있어 흡연 이외의 다른 위험요인이 많이 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이에 대하여 위 연구에 참여했던 박소희 교수가 흡연은 이미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확실한 위험인자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도 Group 1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흡연이 폐암 발병의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식의 담배회사측 주장에 위 연구보고서가 활용되었다고 밝히면서, 우리나라 자료를 근거로 추정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연구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언급하고, 담배회사들이 언급한 인구집단 기여위험도 수치는 인구 전체에서의 노출 분율을 반영한 지표이므로, 담배소송에서는 오히려 노출(폭로)군에서의 기여위험도로 따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또한 국립암센터에서 수행한 다른 연구(개인별 폐암위험예측 모형) 결과에 따르더라도 개인의 흡연 여부와 흡연량, 흡연 시작 연령 등은 폐암 발생에 있어 매우 유의한 위험요인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과, 폐암의 조직학적 타입에 대한 연구자료에서 폐암 중 편평(상피)세포암과 소세포암의 경우에는 흡연으로 인한 발생률이 월등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서 공단 성상철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공단의 담배소송은 흡연의 폐해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이번 세미나가 공단의 승소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김춘진 의원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흡연이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하여 국민들이 보다 경각심을 가지고 금연문화가 확산되어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는 내용의 축사를 하고, 이어 최보율 역학회장은 “담배의 건강 폐해에 대한 인과관계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학문이 바로 역학이다. 법조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에 역학적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역할은 역학 연구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이다”라고 하면서, 향후 소송 과정에서 학계에서 정립된 사실과 전문가로서의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관련 학회들과 함께 지원할 것임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