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로의 딸이 기억을 잃어가는 친정 엄마를 돌보며 겪은 일화 모음집이 책으로 출간됐다. 북랩이 아흔한 살의 치매 노모를 간병하면서 생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죽음을 앞둔 부모와의 교감을 그려낸 에세이 ‘아흔한 살의 초상’을 출간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책은 서울과 풍기를 오가며 치매 노모의 병시중을 든 한 여인의 메모에서 출발한다. 몇 문장 되지 않는 짧은 기록이지만 친우의 애달프고도 아기자기한 간병기를 접한 저자 임선경은 이를 모아 책으로 펴내기로 한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부모의 심정을 알 수 없듯이, 늙는 것을 실감하지 않으면 죽음을 앞둔 노인의 심정도 헤아릴 수 없다’는 말로 시작되는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절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가는 시간의 흐름을 심상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난, 짧은 배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남편, 전부를 걸었던 큰아들에 대한 미련만이 기억에 남은 늙은 엄마와 그런 모습을 측은히 여기는 딸의 동거 기록은 자칫 우울한 빛을 띠기에 십상이지만, 책 전반의 분위기는 뜻밖에 밝다.
나이를 묻는 딸에게 ‘내 나이도 모를까 봐!’라는 말로 발끈하며 일곱이나 적은 수를 말하거나 막내딸이 환갑이라는 말에 ‘막내가 환갑이 되도록 왜 내가 안 죽냐?’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 색색의 찰흙으로 송편을 빚으며 아이같이 해맑다가도 젊은 시절 고이 모은 양은그릇을 내다 버린 큰며느리에 대한 욕을 쏟아내는 예측불허 전개는 독자의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일주일에 이틀이나 함께하는 막내딸을 두고 ‘시집가더니 한 번도 오지 않는다’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하다가도 휴지 한 조각으로 입과 코를 닦고 ‘아직 깨끗하다’며 버릴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은 오랜 습관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망각이 진행되는 치매 노인의 현실을 여실히 담아낸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사랑, 이별, 기쁨, 슬픔, 아픔의 감정이 스며든 일화 모음은 독자에게 삶의 의미와 가족의 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글에 담겨진 엄마와 딸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족과 사랑,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감동적인 스토리이자, 세상의 모든 아들딸에게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잘 모실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저자 임선경은 한의사이자 작사가이다. 윤시내 ‘DJ에게’, ‘천년’, ‘사랑의 시’, ‘고목’과 패티 김 ‘임의 곁으로’, 투에이스 ‘긴 세월’, 오승근 ‘떠나는 임아’, 이미배 ‘갈등’을 작사하였으며, 영화 <접시꽃 당신>의 주제곡 ‘접시꽃 당신’, 가곡 ‘이대로 여기서서’ 등의 작품에 작사가로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