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책고래에서 지난 3일 배의 일생을 그린 독특한 그림책 ‘늙은 배 이야기’를 출간했다.
‘어느 날’에서 ‘사라져 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글 작가와 개성 있는 그림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임덕란 작가가 만나 짧지만 긴 여운이 남는 ‘배 이야기’를 완성했다. 두 작가가 전하는 배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죽음,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늙은 배 이야기’는 바다를 좋아하는 어느 배의 이야기이다. 크고 튼튼해서 패기에 넘치던 젊은 시절부터 바다가 두려워지기 시작한 노년까지, 그리고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을 기록하듯 담담하게 ‘늙은 배 이야기’는 배의 일생을 그려 낸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서사를 끌고 가는 글과 달리 그림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 경쾌한 리듬감을 준다. 이 불균형한 어울림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로 만난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 가슴 한편에 묵직한 울림이 전해진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배이지만, 결국 고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과 짐을 싣고 육지와 섬을 오가는 배이다. 배는 언젠가 수평선 너머 더 넓은 바다를 항해할 날을 꿈꾸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배의 하루하루도 평탄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도 하고, 거대한 파도가 막아서기도 한다. 하지만 배는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 배도 나이가 든다.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아지고, 거센 파도에 맞서는 것도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적막한 바다 한가운데서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 무섭고 힘에 부친다.
물결이 일렁이던 그날, 배는 여느 날과 같이 운항을 준비한다. 처음 마주한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고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고는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바닷골이 깊은 곳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높이 치솟는다.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늙은 배는 온 힘을 다해 맞서지만 결국, 평생 단단하게 묶고 있던 줄을 놓으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만다.
배가 가라앉는 장면에서 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숙연하게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육중한 삶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살아온 배가 바다 깊이 가라앉아서야 쉴 수 있었다는 문장이 쓸쓸한 여운으로 남으며 늙은 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니, 사람의 이야기로 다시 시작된다.
‘늙은 배 이야기’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은 그림책이다. 그럼에도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글과 그림 덕분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구구절절한 사연을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배가 살아온 궤적을 무심한 듯 태연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덮고 나서 느껴지는 울림은 예상 밖으로 깊고 진하다. 쉽게 읽고 지나쳤던 장면들을 다시 펼쳐 천천히 살펴보게 된다.
늙은 배는 비록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았지만 길고 긴 휴식을 얻었다. 그리고 선체 여기저기에는 꽃처럼 아름다운 바다 식물이 자라났다. 일생을 함께했던 바다의 일부가 된 것이다. ‘늙은 배 이야기’의 결말이 온전히 비극으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늙은 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며, ‘절망이 아닌 희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