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맞아 회사 내 중년 직장인들의 비중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일터의 변화로 인해중년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더욱 커지는 듯하다. 현재의 중년 직장인들은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에 적응하고 회사에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년(中年). 인생에 있어 청년과 노년 사이의 세대를 일컫는 말로 대략 40~60세 사이의 사람들이 중년에 해당된다. 중년은 아직 젊고 의욕적이면서도 성숙함과 노련함이 갖춰지는 아름다운 시기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년이 시작되는 40대나 중년의 한복판에 서 있는 50대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듯하다.
얼마 전 중년의 우울증 환자 증가에 관한 뉴스 보도에서 보듯, 언제부턴가 중년의 삶은 힘들고 퍽퍽한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언제 나가야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고, 점점 버거운 가정 경제 지출, 은퇴 후의 삶, 자녀의 출가와 부모의 죽음 등에 이르기까지 인생에서의 큰 변화나 갈등을 겪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심리학자인 엘리엇 자크는 인간 발달 단계에 있어 큰 변화를 겪는 이 시기를 ‘중년의 위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워릭대학의 앤드류 오스왈드와 다트머스대학의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 교수의 연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 지수는 40대에 들어서면서 하강 곡선을 타다가 노년기가 되어서 다시 상승하는 U 커브를 그린다고 한다. 즉, 중년에는 직장 및 가정생활에서의 스트레스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과부하 상태가 되면서 신체적 감정적 소진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 내에서 이러한 위기의 중년 비중이 점차 늘어날 전망이라는 점이다.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며 실제로 조직 내 40~50대 구성원 비중이 증가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일터의 변화는 중년 직장인들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현재의 중년 직장인들은 과거 소수의 중년들이 확고한 위계질서 기반에서 조직을 리드했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에서 롱런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중년 직장인들의 위기를 야기하는 조직 내 큰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이가 많다고 대접받는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에는 직급이 낮거나 승진 시기가 다소 느려도 어느 정도 나이에 의한 파워가 작동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에 따른 예의는 사회 정서상 어느 정도 유지되겠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챙겨주거나 존경해주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존경의 대상이 나이에서 실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차부장들이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무적인 일을 안하려고 하거나 전문적인 실력을 보이지 못할 경우, 그들은 금세 조직에서 도태되기 쉽다.
둘째, 포지션 획득이 어렵다. 과거에는 ‘장(長)’ 자리는 하나씩 맡고 있다가 퇴직하는 것이 당연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에 팀장 역할을 할 법한 나이의 중년 직장인들이 여전히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조직 성장 정체, 낮아지는 퇴사율, 조직 노쇠 등으로 인해 중년 인력들이 늘어나는 구조가 주된 원인 중 하나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이제는 정년까지 현역 팀원으로 뛰어야 하기도 한다. 문제는 포지션 즉 조직장을 맡는 것이 인정 또는 존중 받는 기준이라고 굳게 믿었던 현재의 중년 직장인들이 실무자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는가에 있다. 단순히 포지션 확보를 목표로 한다면 조직에 장기간 정착하며 성과를 창출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도래했다.
셋째, 가속화되는 지식 진부화의 속도도 위기감을 키운다. 예전엔 40대의 경험이 훌륭한 자산이 되었으나 급격하게 변하는 요즘 세상은 40대 노하우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 그간 쌓아온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자산이 이제 와서 구닥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신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사원들도 많아지고 있고,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것도 버거울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의 변화들로 인해 결국 40대 중후반의 직장인들은 자아 존중감이 하락하고 동기부여가 안 되며 역할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예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변화 탓에 현재 40대 직장인들에게는 정년 연장 시대에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 모델마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정년이 연장된다고는 하나 중년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불안이나 불만은 사라지지 않으면서 조직 안에 중년 직장인들의 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
회사는 이러한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이에 적합한 인력 운영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구성원 스스로도 정년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철학이나 태도 등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임원이 아닌 현역으로 많은 나이까지 제 역할에 충실하면서 회사에 가치를 기여하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재들이 있다. 실무자로서 롱런하는 중년 직장인들이 갖고 있는, 아주 평범하지만 또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1. 나이로 대접받기보다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많다고 대접받으려고 하기보다 내가 젊은 친구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현역으로 롱런한 사람들의 주요 특징 중 첫 번째는 나이로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이를 신경 쓰기보다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두고, 회사와 동료, 후배들에게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했던 부장 중 한 분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재계약을 통해 60이 넘은 나이에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분은 항상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것을 롱런의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이들에게 나이 들었다고 인정받고 고참 대우 받으려고 하거나 귀찮고 힘든 일을 떠넘기기 시작하면 후배 동료들도 불편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본인이 적응하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이 여든에도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 많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존경 받고 있는 배우 이순재 씨 역시 나이로 권위를 세우기보다 주어진 배역과 작품을 위해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하면 늙어버리는 것이다’고 말한다(TVN ‘꽃보다 할배’에서). 실제로 그는 많은 나이에도 시트콤을 통해 코믹 연기에 도전하여 시청률에 일조하는가 하면, ‘꽃보다 할배’에서도 모두가 자는 비행기 안에서 10시간 동안 여행책을 보면서 숙소와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하고, 함께 여행하는 다른 ‘할배’들을 통솔하기도 했다.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고 PD나 다른 출연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법도 한데, 언제나 작품을 위해 기대 이상의 역할 변화를 시도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2.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
“회사일 하느라 정신없이 살기보다는 자기 철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왜 일을 하는지, 무엇이 재미있는지, 어떤 보람을 느끼는지, 그리고 나의 앞날은 어땠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 젊었을 때부터 생각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정신없이 수행하다가 문득 일정 포지션 즉 팀장이나 임원 승진에서 누락되면 구성원들은 ‘조직은 이렇게 몸 바쳐 열심히 일해 온 나를 몰라 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불만이나 분노, 또는 열등감 등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롱런한 인재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외적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내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롱런한 인재들의 일에 대한 철학을 수립한 공통의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우선 나의 꿈이나 일의 목적,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 등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했다는 것이다. 내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되새긴다면 불만을 갖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보다 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하여 많은 나이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었던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지 질문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발을 맞추고,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일하며 얻는 10가지 행복’의 저자 다사카 히로시는 일에 대한 철학은 현실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한 닻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의미 있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3. 나만의 경쟁력을 위한 ‘롱런’
“이만큼 인정받을 수 있기까지 지속적으로 공부를 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은 많지만 내가 고민했던 문제를 나만큼 깊게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년까지 롱런한 사람들의 세 번째 특징은 지속적으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그 분야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년 지도’의 저자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내세울만한 장점이나 특기가 없다면 이제는 정년까지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과거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이제는 현재의 실력으로 평가 받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부장은 인터넷 등으로 쉽게 설명된 다양한 지식이 널려 있는 세상이지만 이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적하며 젊었을 때부터 탄탄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처럼 나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머리가 굳어서’라는 표현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6년 미국 타임지는 ‘인간의 지식 업무 능력은 45세를 지나 60세까지 발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실은 바 있다. 미국 UCLA 버클리 의대 신경과학자 연구팀이 1958년 당시 21세 대학생 142명을 대상으로 40년간 장기 임상 실험을 실시한 결과, 인간의 뇌기능이 60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로 미해군 최초 여성 제독이자 최초의 컴파일러를 개발하고 ‘프로그램 버그’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40대가 되어서야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명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90세 이후에도 하루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지금도 연습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직장에서 자신이 전문성을 발휘해 일했던 분야에 대해 ‘머리가 안돌아가’라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은 단순히 ‘노화’라는 통념에 사로잡힌 게으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새겨볼 필요가 있다.
4. 호기심의 끈
“지금 이 나이에도 ‘앞으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은?’이라는 생각을 계속 한다. ‘왜 저렇게 될까?’에 대해 궁금해 하고 지금부터 10년, 20년간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네 번째 특징은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해 지적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흔 혁명’의 저자 다케무라 겐이치는 나이를 먹었지만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호기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인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태도로 일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에 대한 경륜이 쌓이고 익숙해지면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에 대해 ‘다 해봤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렇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