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비전력 이슈 재점화
전자/IT제품은 기본적으로 전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기기이다. 그렇다 보니 소비 전력이 얼마나 높은 지에 대한 이슈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2000년대 초/중반, TV 시장에서 소비전력 이슈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LCD TV와 PDP TV는 표준 선점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승부는 의외의 곳에서 싱겁게 결정되어 버렸다. PDP TV는 LCD 대비 평균 30~40% 더 높은 전력이 필요했고, 소비자들은 ‘TV를 보면서까지 전기료를 걱정하기는 싫다’면서 냉정하게 PDP를 외면해 버렸다. PDP는 해상도, 잔상(Burn-in) 등에 있어서도 LCD 대비 열위였지만, 소비전력 문제는 소비자가 가장 크게 체감하는 단점이었다. 2000년대 초반 파나소닉, LG, 삼성 등 주요 TV기업들은 경쟁적으로 PDP를 추진했으나 현재는 대부분 철수하고 극소수의 기업만이 제한된 물량을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스마트폰이 등장했는데, 출시 초기부터 소비전력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상당히 컸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워낙 크고, ‘신기한’ 물건이다 보니 충전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소비자들은 어느 정도 감내하였다.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소비전력 이슈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높은 해상도, 카메라 성능, 더 빠른 프로세싱 속도,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는 것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였다. 인간의 망막(Retina)으로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대거 탑재되었고, 신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2배씩 빨라지는 프로세서, 웬만한 PC에 버금가는 메모리, 그 외에도 각종 센서와 리시버 등이 수시로 작동하면서 스마트폰의 전력 사용량은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또한, 경박단소 경쟁으로 인해 배터리의 용량은 커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전히 사용자들은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충전해야 하고, 하루라도 충전을 거르게 되면 이튿날 방전되어 안절부절 하기 일쑤이다.
고스펙 스마트폰에 대한 체감가치 둔화
최근 스마트폰 시장을 보면 과도한 스펙보다는 실질적인 ‘가격 대비 성능비’를 더 중시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스펙은 상향 평준화 된 상황이고, ‘조금 더’ 스펙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한계 효용이 많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신제품이 나오면 기존 대비 월등하게 좋아진 기능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고, 판매 가격을 상승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웬만한 기능에는 소비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어렵고, 오히려 ‘뭐가 달라졌는데 또 비싸졌냐?’라는 비아냥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스펙이 높아지고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구조의 특성 상,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백라이트(Backlight)가 소비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 통로(개구 면적)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더 많은 광원이 필요하고, 소비전력도 더 많이 필요하게 된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센서가 부착된 스마트폰에서는 더 많은 실시간 상황인지(Context Awareness)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만큼 전력 소모도 높아진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소비자들의 고스펙 제품에 대한 니즈는 다소 주춤하고 있다. 자주 쓰지도 않는 기능 때문에 굳이 더 많은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제품을 구입하고 더 불편하게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가치를 크게 끌어올릴 만한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지도 모른다.
웨어러블의 소비전력, 제품 성패를 가늠할 핵심 이슈
소비전력에 대한 문제는 스마트폰보다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에서 훨씬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매일 충전하기도 귀찮은데 웨어러블까지 자주 충전해야 한다면 소비자들은 웨어러블을 생활필수품으로 과연 여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많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잦은 충전에 따른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웨어러블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보다 소비자가 감수해야 되는 것, 특히 충전 스트레스가 더 크다면 시장에 안착하기가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웨어러블 제조사들은 웨어러블의 소비전력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 워치 중 소비자 반응이 긍정적인 제품들을 분석해 보면 상당수가 소비전력 이슈가 적어 한 번의 충전으로 최소 5일 이상 사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차라리 기존 수은전지를 탑재하여 6개월~1년 정도는 충전 및 소비전력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제품들이다. 웨어러블에서의 소비전력 문제는 제품 카테고리의 성패를 가늠할 핵심 요소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UHD 확산으로 TV 에너지소비 효율 급락
PDP TV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TV의 소비전력 문제도 UHD 등장과 더불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개구 면적이 줄어들어 기본적으로 더 많은 광원이 필요한데 TV 화면 크기까지 계속 대형화되면서 훨씬 더 많은 전력이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UHD 대비 해상도가 1/4에 불과한 FHD TV의 경우 대부분이 에너지소비 효율 1등급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UHD로 넘어 오면서 대부분 3~4등급으로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TV의 전체 소비전력이 크지 않은 상황 속에서 효율등급이 몇 단계 떨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TV의 평균 판매가격(ASP)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 서치에 따르면 1,000달러 이상 TV의 비중이 2012년에는 8.9%이지만 2017년에 3.2%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TV와 관련된 가격 민감도가 크게 증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소비전력과 같은 유지비용이 새로운 경쟁 요소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에너지소비 효율등급 두 단계 정도의 차이를 금액으로 환산(교체주기 8년, 일평균 4시간 시청 기준)해 본다면 OECD 국가들을 기준으로 대략 30만~40만 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누진세율이 높은 국가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전기료가 부과될 수 있는 구조이다. 대부분의 TV 가격이 수십 만 원 수준인 상황 속에서, 소비전력 차이로 인한 유지비용 격차가 TV 구입가의 절반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UHD TV는 글로벌 주요 TV제조사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는 하이엔드(High-end) 뿐만 아니라 볼륨존(Volume Zone)에서도 본격적으로 탑재될 전망이다. 볼륨존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하이엔드 대비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소비전력에 따른 유지비용 이슈는 더욱 불거질 수 있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소비전력 혁신 제품을 내놓고, 이를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적극 어필한다면 ‘저소비전력’은 TV 구매에 있어 다시 한번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할 지도 모른다.
새어 나가는 가전제품의 대기전력
얼마 전, 셋톱박스의 높은 대기전력이 이슈가 되었었다. 대형 TV의 대기전력보다도 최대 26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무심코 켜둔 셋톱박스가 의외로 높은 대기전력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새어 나가는 가전제품의 소비전력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셋톱박스처럼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 형태로 제공되는 제품일수록 제조사 입장에서는 제품 개발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저효율 부품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소비전력이 높아질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조삼모사식의 제품이 많아질수록 전자/IT 시장에서의 연비(초절전) 이슈는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셋톱박스 외에도 생활가전 중에서 대기전력이 높은 기기들은 의외로 많다. 한국전기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모뎀, 에어컨(스탠드), 보일러, 오디오/스피커, 유무선 공유기, DVD 등 무심코 켜놓은 가전에서 새어나가는 대기전력은 각각 셋톱박스의 절반 정도로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게다가, 최근 열린 주요 가전 전시회나 컨퍼런스에 가보면 경쟁적으로 스마트홈, 사물인터넷 제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기존에 없던 신개념 제품들이 스마트홈이라는 범주 내에서 얼마든지 가정 내에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최근 아마존에서 내놓은 ‘아마존 에코(Echo)’의 경우, 작은 원통 스피커처럼 생긴 제품으로 음성을 통해 간단한 검색, 음악 재생, 쇼핑, 알람, 일정 확인 등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카테고리의 가전제품들이 쏟아지고 있고, 이러한 제품들의 특성상 항상 켜져 있어야(Always-on)하므로 소비/대기전력 이슈는 항상 잠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물인터넷(IoT)이 확산될수록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많이 사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사용하는 전자제품들 중에서 어떤 것이 얼마나 소모가 많은 지를 더 잘 모니터링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스마트 그리드’ 컨셉이 대중화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GE는 일반 가전을 뛰어 넘어 산업용 장비에까지 전력 누수가 어떻게 발생하는 지를 실시간 파악하여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사업모델을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 한 축으로 추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소비전력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정량적으로 기기/부품별 소모되는 전력량을 알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소비전력은 제품 구매 시 중요한 고려요인으로 다시 한번 부각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2. 소비전력 해결 유형 3가지
소비전력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다. 첫째, 소비전력이 크게 발생하는 요소를 찾아 개선시킴으로써 소비되는 전력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둘째, Sub-Device와 공생하면서 전력 부담을 분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제공하는 원천(Source)과 관련된 기술을 혁신하는 것이다.
① 소비 전력량 최소화
과도한 스펙